콩나물 무침, 잔멸치 볶음, 깍두기, 배추김치, 김이 반찬입니다. 당신은 이 반찬들돠 밥맛 좋게 한 그릇 뚝딱할 수 있나요? 고기반찬이 꼭 없더라도 저는 괜찮습니다. (평소에 칼로리 많은 음식을 워낙 많이 먹으니까요. ) 전형적인 한국인이라면 이 반찬만 나왔을 때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고기가 없는 식탁, 왠지 밥을 먹고도 돌아서면 허기질 것 같은 기분이 벌써부터 들지는 않으신가요?
그런데 이 반찬에 메인디쉬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우국. 지인의 소개로 무우국을 9천 원이 나주고 벼르고 별러 먹는다고 했을 때,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곰탕도 아닌 무우국을 그 가격에?
펄펄 끓는 무우국이 등장합니다. 맑은 국물에 한번 흠칫 놀라고, 한 숟가락 국물을 맛본 순간 표정이 풀립니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그리고 입은 쉴 새 없이 오물오물 움직입니다. 이 소박한 반찬에 대한 불만을 모두 제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메인디쉬, 무우국. 식당의 단출한 메뉴판에서 유난히 빛나는 무우국.
진짜 승부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보여줍니다.
어렸을 때는 외모부터 튀고 싶었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하고 등교해서 선생님의 따가운 잔소리를 들었었습니다. 타이트한 옷으로 몸매를 드러내고, 스모키 화장을 하고, 나 어디서 꿀리지 않고 좀 논다 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어필하고 싶던 대학교 동아리 선배였습니다. 하지만, 30대인 지금은 청바지에 맨투맨티 한 장 걸치고 화장 안 한 얼굴에서도 빛이 나는 '여유와 연륜을 갖은' 아는언니이고싶습니다. 후배가 어떻게 일처리를 할지 모를 때, 망설임 없이 찾아갈 수 있는 회사의 '뭘 좀' 아는언니이고 싶습니다. 동생이 맛난 거 사달라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그래, 반반 시키지 말고, 양념치킨도 한 마리 시키고, 후라이드도 한 마리 시켜'라고 말할 수 있는 리치언니이고 싶습니다.
한일관의 무우국은 30대인 제가 지향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그냥 아주 소박한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그렇지만 한입 입에 넣은 순간 모두를 올킬하는 압도적인 맛. 정성스러운 국 한 그릇에서 인생에서 제가 추구하는 바를 보았습니다.
주말에는 제가 유일하게 만들 줄 아는 음식 중 하나인, 소고기 무우국을 끓여봐야겠습니다. 비록 한일관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는 않을지라도, 100년째 이어온 전통이 변하지 않듯, 그저 너무 튀지도 묻히지도 않고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