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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Dec 20. 2020

연애, 경로 설정이 잘못됐다면, 바꾸면 돼

연애, 일, 관계에서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 멘털 잡는 법



나: 저 오늘 오빠 운동하러 갈 때 따라갈래요. 오빠 맨날 가는 그 공원으로 가려고요.


그: 나 오늘은 실내 운동할 건데....


나: 에이, 5분만 생각해보고 결정해요.


그: 아니. 이미 1시간 동안 충분히 생각해보고 낸 결론이야.




며칠 전부터 벼르고 벼른 실외 걷기. 한파로 실외 운동을 전혀 못하던 일주일간도 오빠는 계속 야외 달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야외의 동산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늘 저에게 풍경사진이며, 자신의 사진을 공유해주었습니다. 저희는 그 사진을 매게로 아침인사와 관심사 공유와 다음 주제의 이야기들로 하루를 이어갔습니다. 한 달쯤 지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는 딱히 이 애매모호한 우리 관계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관계가 무슨 관계야? 카톡 친구야? 썸이야?'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주기적으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어색하게 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묻는 제가 촌스러운 것 같기도 했습니다.


'썸은 무조건 얼굴을 보고 전화통화를 해야 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그가 운동하는 시간에 맞춰보기로 합니다. 얼굴을 보고 걷다 보면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러면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았습니다. 제 감정이, 그 사람의 존재가 그리고 애매모호한 우리의 관계 정의가...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만남을 피해 빠져나갈 구멍을 갖춘 채 거절을 표합니다. 그가 오케이만 하면 당장 나가려고 준비했던 제 운동복과 그 와중에 드라이한 머리, 그 와중에 자연스러운 화장을 준비했던 저는 그의 단칼의 거절과 단호박 같은 굳은 심지에 잠시 멘털이 나갔습니다.


버퍼링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원래 계획이었던 야외 운동은 시작도 못한 채 집안 정리를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설거지통의 그릇을 씻고, 사과를 박박 문질러 닦고, 감을 깎았습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 제가 하는 방법, 집안 청소. 물건 정리. 그리곤 생각했습니다.

 

원래 오늘의 목적지로 가려면 삼십 분 이상 버스를 타야 한다. 그곳에 나 혼자 갈 이유가 있을까?
그 없이도 원래 그와 함께 걷고 운동하는 계획을 그렸던 그곳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늘 내가 다니던 경로로 반복해서 걸어가야 할까?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시간이 있다.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나의 운동 목적지를, 내 애정을 쏟아야 할 목표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경로 변경하면 된다. 아직 바꿀 시간은 충분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꾸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고,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마음 아프고 후회하는 것보다, 아무런 시작이 없었던 지금, 경로 수정하면 된다.


생각이 복잡할 때 제가 하는 두 번째 습관 루틴. 걷고 또 걷습니다. '좀 더 생산적인 날 위한 것을 하자. 그렇다면 내가 관심 있는 책 쓰기, 글쓰기를 알아보러 서점까지 걸어가 보자.' 집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합니다. 양화대교를 걸으면서 강을 바라봅니다.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보고 확인할 사항을 점검하고, 추운데 걸어서 인지 피곤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을 탔습니다. 마음이 한꺼번에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깔끔해졌습니다.


자꾸 내 마음을 서운하게, 외롭게 하는 사람은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머리로, 이성적으로는 그를 이해한다고 해도, 내 마음이 춥고,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 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한 달이면 충분히 그를 알아봤으니, 정말 잘했고, 그를 잘 알았으니 이제 미련 없이 끝낼 타이밍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치료의 선물>  '조언을 제공함으로써 자각을 촉진하기'의 다음 예시에 나오는 남자(Jay)의 상담 사연과 비슷한 상황인듯했고, 저는 여자(Meg)로서 간접적으로 상담을 받은 듯했습니다.


사별 후, 아내를 오랫동안 간호해주고, 자신까지 돌봐주는 Meg에게 Jay는 이런 행동을 합니다.

그는 그녀를 아내로서 원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를 임대료 없이 그녀에게 주었다.  후에 그는 여자들과 여러 차례 짧은 관계를 맺었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그는 고독으로 너무 괴로워서 자신과  어울리는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Meg에게 다시 돌아갔다. 그동안 내내 그는 어쩌면 결국에는 그와 그녀가 다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단서를 계속 주었다. Meg 자신의 삶을 보류해 놓고 그를 위해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상태 있었다.
나는 Meg에게 신뢰롭지 못한 그의 행동이 그녀를 진퇴양난으로 만들  아니라  자신의 불쾌감이나 정신불안, 죄책감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나는 그가 정말로 그녀에게 후하게 대하고 싶어 다면, 그녀가 계속 그에게 묶여 있지 않는 방식, 예를 들면  그녀에게  잘라 현금이나 아파트 증서를 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해주지 않았는가를 지적했다.  번의 그런 직면이 있은  그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어서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고독에 대한 대비와 보험으로써 그녀와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치료의 선물> P140


제가 내린 결론을 실천하기 위해 그와의 카톡방을 지웠습니다. '작별인사 혹은 무엇이 문제였다고 그에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미 저는 이 관계에 대해 의심스럽거나 모호할 때 늘 머뭇거리지 않고 먼저 물어 오해를 풀고, 이어가는 노력을 했으니까요. 애써 내 마음의 위로를 혼자 하고, 애써 정신승리를 한 시간은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제 나름의 기준으로 행동하고도 마음이 울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친구가 드라이브를 시켜주었습니다. 하루를 근사한 추억으로 채우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던 마음이 사르륵 풀렸습니다.


<운수 좋은 날>의 결말이 아내의 죽음이었던가요? 마음을 잘 추스른 하루 끝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는데 화가 단단히 나있었습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빠 생신을 잊어버렸다고 챙기지 않았다고 서운하셨나 봅니다.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제 연애 감정에 취해 사랑하는 진짜 내 사람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또다시 멘붕에 빠진 저에게 옆자리의 친구가 말합니다.


 괜찮아.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어.
아직 시간 있으니까 잘 수습하면 돼.


이틀 동안 걷고 또 걷는 사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네요


잘못된 길로 경로는 설정했으나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면 과감히 옳은 방향으로 경로를 바꾸면 된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괜찮다. 수습만 잘하면 된다.


인생이란 길을 걸으며, 그 길 위에서 오늘도 하나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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