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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Dec 27. 2020

집의 정리정돈이 당신의 우울감을 반영한다면?

<치료의 선물> 마지막 주 에세이


최근 읽은 책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도 그렇고 <치료의 선물> 제58장 '가정방문을 하라'에서도 그렇고 자살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집안 정리를 하지 않고 방치합니다. 죽은 이의 집을 방문해보면 어김없이 쓰레기 더미의 집에서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집의 중요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얼마나 비싼 집에서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집의 관리 상태가 그 사람을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인 요즈음 집이란 공간에 대해 전에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저는 집을 그냥 잠자는 공간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독립한 후 줄곳 아담한 오피스텔에 살아온 저는 침대와, 붙박이 옷장이 있고 간단히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인덕션이 딸린 주방이 있는 공간 구분이 없는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좁은 집에 있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실외로 나가 많은 활동들을 하려고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코로나를 맞았고, 그때부터 집에 정을 붙이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습니다. 작은 집이다 보니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짐이 너저분하게 보이는 게 많아서 시간이 나면 한 구역씩 맡아 정리하고 버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1) 주방 정리
특히나 집밥을 해 먹기 시작하면서 냉장고와 싱크대 그리고 홈바 관리하는 것을 수시로 해야 했습니다. 1인 가구의 맹점인 음식물 재료를 사고 버리지 않기 위해 수시로 정리하고, 그럼에도 불고하고 썩어가는 재료나 먹고 남긴 음식을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다지 잘하지는 못하지만, 집밥을 해 먹기 전에는 냉장고 문 열기도 무서울 정도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정리는 어느 정도 되고 있습니다. 더 잘해보려고요.

2) 옷장 정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 것은 매 한 가지인데, 옷장 정리라도 잘해야 없는 옷 중 중복되게 사지 않고 있는 옷을 잘 활용해서 입을 수 있습니다. 이케아에서 산, 칸칸이 수납 걸이를 통해 옷 정리를 하고 있는데 공간 활용에 매우 유익합니다. 겨울 패팅이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행어라도 하나 들여놓고 싶지만, 그러면 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복 섹션은 별도로 마련해 놓았습니다.

3) 화장대 정리
화장품이 종류별로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귀걸이, 팔지 같은 액세서리도 작은 수납함에 담아 정리했습니다. 그렇지만 안 쓰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해도 정리해도 깔끔해지지 않는 이 섹션이 골치입니다.

4) 책
전자책은 가독성이 떨어져서 저는 종이책을 읽는 것은 선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늘 책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 우선을 책장과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두고 날 잡아서 헌책 정리해서 중고서점에 팔아야겠습니다.

철없던 시절 부모님이 정리정돈을 말씀하시면 지겨운 잔소리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하고서는 집안 정리정돈이 나를 가꾸는 일이라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니 집안 정리정돈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나를 포기하는 일이더라고요.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화장을 채 못 지우고 침대에 누워서 잠들고 일어났던 새벽에 저는 제 자신을 기꺼이 돌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으로 끼니를 채우고 설거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잠들었던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아마 우울증 비슷한 것을 겪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의 기호, 그의 흥미, 그의 위안이 되는 !  방문은 치료 과정의 측면에서 확실히 환자에게 의미가 있었다. 나는 방문하는  충분히 마음을 썼다. 그리고 그것은 환자가 자신의 집을 바꾸는데 나의 도움을 원한다고 선언하는 극적인 변화의 단계로 이끌었다. 우리는 집을 바꿔 나가기 위한 일련의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하였으며, 이것은 환자의 슬픔을 다뤄 나가는 과정을 촉진하며 진척시켰다.
다른 이들은 마치 그들의 삶에서 전혀 자신이 아름답지 않고 위안을 얻을 자격도 없는 것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치료의 선물> P153 58 가정방문을 하라


그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집을 돌보고 가꾸는 것이 나를 돌보는 일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기울이게 됩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주기적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먼지 쌓인 곳을 물걸레로 닦아줍니다. 화분에 물을 주며 시들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배달음식이나 라면이 아닌, 내일 먹을 끼니를 위해 직접 건강한 음식들로 장을 보고 소분하여 보관하는데 걸리는 시간들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님을 이제야 깨우칩니다. 출근 전 침대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보일러를 체크하고 나갑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고 나온 날이면 갑자기 비가 올까, 눈이 올까 걱정하는 마음이 독립 전에는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온전히 저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일이라 생각되니 허투루 할 수가 없습니다. 조명이나, 향기, 이불의 감촉까지 신경 쓰고 싶은데 이 부분은 센스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조금씩 변화를 주어 공간에 생기를 더욱 주고 싶습니다.

특수 청소를 하는 <죽은 자의 집> 작가 김완은 죽은 이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의 고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일할 때 괴롭지 않은지 물으면 딱 잘라서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는 없지만, 도저히 즐거운 점이라곤 없냐고 물으면 딱 잘라서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벽지가 뜯겨 나가고, 장판 한 장 없이 오로지 시멘트 벽만 남은 집을 보면 그제야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
<죽은 자의 집 청소> P146


집을 정돈하는 것이 나를 가꾸는 일이라고 실컷 이야기한 이 글에 정리된 집안 사진 하나 첨부하지 않는 이유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외모적으로 자신을 돌보고 가꾸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이 아프지 않은지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다독여 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나의 공간인 집, 회사도 깨끗이 정돈하길 바랍니다. 정리하다 보니, 주변 사람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거의 추억에 머무는 이들, 혹은 지금 내 곁에서 힘이 돼주는 고마운 이들을 구분하여 핸드폰의 전화번호 정리도 해보는 '정리정돈의 12월'이 되길 바랍니다. 이 정리가 깨끗이 마무리될 때 쯔음엔 코로나가 말끔히 종식되어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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