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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Dec 27. 2020

죽음에서 깨닫는 삶의 순간

서평_죽은 자의 집 청소_김완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는 건 여간 끔찍하지 않습니다. 가끔씩 택시 뒷좌석에 앉아있는데, 운전기사가 총알택시의 속도로 운전할 때처럼, 죽음이란 단어를 어렴풋이 떠올릴 때도 대부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기곤 했습니다.

최근 지인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장례 문화가 우리나라와 달랐던 경험을 공유받았습니다. 미국인 남자 친구 아버지의 죽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했었는데, 그가 생전에 즐겨가던 바(bar)에서 사람들이 모여 그와 함께 있었던 좋은 기억을 나누는 문화를 체험한 것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습니다. 저에게도 문득 좋아하는 영화 <코코>에서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영화는 멕시코의 기념일 망자의 날 ( Día de Muertos)을 통해 죽은 이들이 저승 세계에서 그들만의 두 번째 삶을 즐기며 사는 것을 영상미 있게 표현합니다.


영화 <코코> 에서 표현하는 죽은자들의 세계


죽음에 대한 어두운 선입견을 조금 버리려 앞의 이야기들을 꺼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의 집 청소>_김완 지음_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많은 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경험하고 깨우치고 그것을 글로 남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회사에서의 에피소드로, 취미활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느끼고 글로 정리해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그의 직업인 특수 청소 서비스를 통해 삶에 대한 단상을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들어본바 생소한 직업, 그러나 존재하는 직업. 작가의 직업은 특수 청소입니다. 이 일은 사람이 죽고 나면 누구도 그 흔적을 처리하기 꺼려하는 곳에 의뢰를 받아 달려가고, 시체와 분비물 그리고 남은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레기를 청소하다 보면 죽은 자는 왜 죽게 되었는지 그 말 못 할 사연을 작가의 시선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죽은 이들이 머물었던 집을 청소하다 보면 쓰레기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단면이 보이고, 그를 통해 그들의  다양한 사연이 어땠을지 유추하게 되는 것입니다.

30대 초반의 취업을 준비하며 어렵게 삶을 고군분투했던 취준생 여성, 타인에게는 매우 예의 바르고 착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신에게는 착하지 못했던 여성, 생계를 잊기 조차 어려웠던 체납 요구에 시달리던 젊은이의 죽음 앞에는 가족조차 시신 수습을 거부하는 단상, 집안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돈도 쓰레기도 가치 없는 것이 매한가지로 널브러져 있던 현장, 고양이의 시체를 치우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은 없고, 모든 존재는 존재만으로 귀하다는 것을 느끼는 현장의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울 것만 같았던 죽음과 그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삶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이를 너무나도 깔끔한 글솜씨로 정리합니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P103


작가는 자신의 삶의 고민과 생각들을 죽은 자들의 흔적을 치우며 되내었고, 그에 대입해서 상황을 바라보았고, 상상했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생각이 자신만의 상상이었고, '사실'은 전혀 달랐음을 확인하는 순간에, 상상에 순간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문제로 상황을 바라보았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는 감정에 빠져 혼란스럽지 않아야 하는 직업을 갖은 이로서 묵묵히 감정 없이 일을 처리하려 하지만, 죽음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생각하며 수없이 뭉클해지는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전에 회사 선배와의 대화가 문뜩 떠오릅니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 죽지 않고서야. 죽음까지 가는 경험을 하면 그래도 조금은 변하겠지..."라고 종종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한 7년쯤 전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만 알았지만, 지금을 선명하게 이해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당시 대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그런 죽음을 매번 눈앞에서 보는 이는 현재의 삶에 대해 많이 감사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오늘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죽음이 아직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나, 죽음 앞에 겸허하고 담담할 수 있도록 현재의 삶을 충실히 온전히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만은 변함없습니다. 코로나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제한적 삶을 살며,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 직, 간접적으로 노출되고 있기에 이 책을 적절한 시기에 이렇게 읽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죽음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런 경험 혹은 나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으로 품어보자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짐하자면, 누구도 마음부터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평소에 따뜻한 말 한마디, 관심의 표현하나 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외롭게 독거노인이 되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 베풀고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며 살고 싶습니다. 어느 순간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도 덤덤할 수 있도록 꽉 채운 오늘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삶이 끝난 이후에도 누군가  나로 인해 행복했던 추억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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