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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Jan 13. 2021

머리와 심장을 동시에 때리던 그 말

오랜만에 돌아온 '아는언니'의 업무일지


퇴근시간 무렵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질렀습니다. 신임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팀장님 통화 가능하신가요?'

'지금 회의 중인데 끝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라고 답변이 왔고, 진짜 회의가 끝나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이미 퇴근길 버스 안이었습니다.

 

유관부서와 분노할만한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 우선 일로서 해결해야 할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버스니 내려서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했습니다. 10분 후 버스에서 내린 저는, 다시 전화를 걸어서 이번에는 일적인 접근이 아닌, 유관부서의 '개망나니' 갑질 태도를 조목조목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업무에 대해 유관부서에서 요청한 대로 해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팀장님, 제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A까지이고, 그쪽 부서에서 B와 C를 요구하지만 그것을 제가 할 일이 아니니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몇 달 동안 쌓아놓은 감정을 10분 내로 요약해서 말하고 나서 그제야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두려웠습니다. '회사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 싫은 것, 못하겠는 것을 말하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것'은 그냥 암묵적인 법칙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싫다고, 못한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팀장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걱정하는 순간.

 

"아는 언니 선임이 그렇게 말하는 건... 여태까지 그쪽 부서에서 부당하게 요구한 게 많아서 그런 거겠지?"

"네. 전임 팀장은 무조건 그 팀이 요구하는대로 다 해주라고 했지만, 제가 생각할 때, 그쪽의 요구는 실무담당자 선에서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임 팀장님께서 의사 결정해주시고, 저는 팀장님 지시사항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쪽 부서의 행동은 정말 비매너라고 생각해요. 그 사항에 대해서도 팀장님께서 주의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도 또 강조했습니다.

"팀장님 이런 일로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이 일 못합니다. 이전 관행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팀장님께서 도와주세요."


이미 뱉어버린 말,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내 입 밖으로 튀어나간 그 말....

'신임 팀장님은 도대체 뭐라고 말씀하실까?' 심장이 쫄깃해졌습니다.


"음... 그래요. 지금이 바로 '지혜'를 발휘해야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아는언니 선임이 한 말...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부서에서는  나름 이유가 있죠.

  그렇지만  부서의 이해관계가 다른 건데, 서로 싸울 필요는 없으니 지혜를 발휘해보죠."


라고 말씀 주시고는, 유관부서와 통화를 하시고, 다시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제가 말한 할 수 있는 A까지의 업무를 해서 주고, B와 C는 그쪽 부서에서 하도록 조율이 됐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유관부서의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YOU가 달라고 닦달하던 ABC 중  A는 제가 최대한 빨리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B를 제가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부서에서 지원한지 않기 때문에 해주고 싶어도 못합니다. 이 부분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이 당신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제가 도울 수 있는 한 최대한 지원하겠으니, 너무 걱정스러운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저를 닦달하지 마십시오.)라고 마음에도 없는 충성과 지원의 사탕발림 약속 멘트를 날리고 끊었습니다. 어짜피 그는 다음달에도 자료를 빨리 달라고 저를 닦달할 것이고, 저는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가 듣지 못할 쌍욕을 자리에서 하면서 지원을 잘 안해주려고 뺀질거리고 있을 것이란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녁식사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천천히 먹고, 대충 자료를 보내 주었습니다.


글로 쓰고 나니 단순해도, 감정 소모가 커서 모든 일을 마치고 한 2시간은 걷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라..

'지혜'와 '순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머리와 심장을 동시에 때린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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