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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Dec 09. 2020

여자가 대기업에서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강철의 여선배'가 퇴사하던 날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어떻게 나의 퇴사를 알리는 메일을 쓸지 살짝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남들처럼 진부한 한마디,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게 될지 상상하기도 했었습니다.


퇴근 무렵 '퇴사 인사'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설마...' 하며 열어보았더니 제가 한창 해외영업사원으로 열일하던 시절 함께 했던 전설의 여선배의 퇴사 메일이었습니다. 그녀를 떠올리면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만, 우선 그녀가 퇴사를 한다는 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메일로 답장을 했습니다. "퇴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고, 앞날에 꼭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퇴근후 휴대폰을 보니 그녀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퇴사 전 시간이 하루 이틀 남았는데, 기회 되면 얼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창 모니터를 보며 보고서 만들기와 씨름하던 중, "여기 있었구나..." 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녀였습니다. 잠깐의 티타임을 갖았습니다.


그녀는 건강상의 이유와 조직개편 시 타이밍의 문제 등으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힘든 결정 하셨겠네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녀는 해외영업을 함께하던 시절의 팀원들은 뭔가 정말 끈끈했다고 돌이키며 저에게 다음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여자는 길면 한 50살까지는 일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한 45세쯤 되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
혹시 '아는 언니' 네가 계속 일한다면, 일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이 회사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 꼭 생각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준비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일해.
그리고 회사에서 일한 이후의 '제2의 인생'에 대해 꼭 생각해보고,
그때는 네가 어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할 수 있길 바라.

그녀가 얼마나 쉽지 않은 결정을 했는지 느껴졌습니다. 함께 일할 때 정말 꼬장꼬장하고, 무섭고,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듯 무서웠던 선배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함께 일하던 당시, 그녀는 늘 "아는 언니, 일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잘해야 돼." 라며, 팀 내 유일한 여자 선배로 저를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던 '하늘 같던 선배'였습니다.


물론 해외영업 시기를 마무리하고 팀이 나뉘고, 그녀와 저는 각각 해외영업을 떠나 다른 길을 가고, 그 이후에는 종종 만날 때마다 함께 일하던 때와는 또다른 느낌의 그저 따뜻한 '아는 언니'였습니다. 제가 회사를 오래 다니고, 회사의 분위기가 점점 바뀌는 게 눈에 보인다는 글을 많이도 썼지만, 함께 일하던 선배가 퇴사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마음이 정말 다른 일이네요. 그리고 해외 영업 사원 당시 함께 일했던 수없이 많은 남자 선후배들이 해외 주재원을 나갔다 들어오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있지만, 이렇게 40대 중반에 퇴사하게 되는 여자 선배를 보는 마음은 또 다른 싱숭생숭함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


그녀와의 짧고 긴 티타임을 하고, 그녀를 배웅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일을 마무리하는 바쁜 손놀림의 순간에도 그녀의 투명하던 눈물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던 시절 그녀는 저에게는 정말 '강철의 여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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