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머리는 타고나는 걸까요?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걸까요?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분명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몇 번만 알려주면 금방 이해하고 기억력도 좋아서 잘 기억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설명해도 도통 이해를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가 있지요. 이런 차이를 느낄 때면 공부 머리는 타고나는 것이니 내 노력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풀이 죽기도 합니다. 공부 머리가 그냥 타고나는 것이라면 후천적인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머니들의 노력도 마찬가지겠지요? 아이를 키우다보면 현실에서 이린 일을 자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육계에서는 후천적인 지능 반달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큐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80년대에나 했던 생각이며 다양한 영역의 지능을 강조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입니다. 아이마다 각자 다른 지능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뇌 과학자들은 보통 49 : 51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선천적 지능이 49라면 후천적으로 발달되는 지능이 51이라는 것이죠. 10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저도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좀 부족하고 늦는 아이도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기본기를 쌓아주면 학습 능력이 뛰어난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분명 가치 있는 노력입니다.
세연이는 확실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였습니다. 한글 읽기 수준도 떨어지고, 어휘력도 낮아서 대부분의 어휘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을 더듬더듬 소리내서 읽을 수는 있었지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요. 호기심도 별로 없어서 무엇을 알려줘도 궁금해하지 않고, 대충대충 넘겨 버리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아이 어머니도 공부로는 힘들 거 같다며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림이나 무용을 시켜서 대학을 보내면 어떨까 상담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머니께서 다른 아이와 비교 해서 늦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요.
세연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독해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꾸준히 읽기 공부를 했습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책에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모르는 단어를 그냥 넘기지 않도록 설명도 해줬습니다. 따로 어휘력을 키워주기 위해 어휘 게임도 꾸준히 해줬지요. 물론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연이가 새롭게 사고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쩍 질문을 많이 하며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 이지요. 보통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질문을 하니까, 좀 늦은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연이의 뇌에서는 특별 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 변화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세연이가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입니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글로 옮기도록 지도했는데, 마침 교내 글쓰기 대회 주제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것이었죠. ‘금연’이 주제였는데, 아빠가 평소에 담배 피는 것이 못마땅했던 세연이는 솔직한 자기 마음을 글에 담아냈지요. 세연이의 진심이 통했는지 세연이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1. 2, 3학년 전체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렸어요. 나라고 믿기지가 않다가, 갑자기 눈물이 막 났어요 " 세연이는 상을 받고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 기뻐서 눈물이 나고, 주저 앉을 정도의 순간이라면 한 인간의 인생에서 몇 번 경험하지 못할 강렬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강렬한 기억은 뇌를 강하게 자극하고, 뇌에서는 엄청난 시냅스 활동이 이루어집니다.
신기하게도 이것이 불씨가 되어 공부에 대한 욕구가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동화책만 읽으려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실용서를 읽고 싶다며 가지고 왔고, 시키지 않아도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지요. 이렇게 책 속에서 궁금한 것을 알아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휘력도 순식간에 자라났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숙제도 하고, 학교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인 아이가 되었답니다. 똑똑해지고 싶어서 더 열심히 책을 보고, 공부하는 아이가 된 것이지요.
남들보다 늦다고 '넌 못해'라고 낙인을 찍고 핀잔을 줬다면, 이 아이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성장했을 겁니다. 사실 제가 이 아이에게 해 준 것은 많지 않습니다. 믿고 기다려주며, 기본기를 쌓아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지능을 강조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초등학교 1, 2학년 시기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시기가 바로 뇌에 자신만의 뇌지도를 만들어가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공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기면. 공부에 대한 뇌에 긍정적인 뇌지도가 생긴답니다. 그리고 함께 책을 꼼꼼히 읽으며 독해하는 힘을 키워주며 기본기를 쌓아줬기 때문에, 혼자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 아이가 자라서 세상을 위해서 어떤 멋진 일을 해낼지 늘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공부 머리는 조금 뒤쳐질지 몰라도 이런 아이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테니까요.
윤 경 미
(현) 성북동 좋은선생님 원장
(현) 좋은 연구실 대표
(전) 대치동 KYLA Smart Education 원장
(전) 성북동 성당 주일학교 교사
저서 및 저작 활동
<뮤지컬 앤 더 시티> 저자
<일기는 사소한 숙제가 아니다> 저자
<초등 1, 2학년 처음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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