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순씨가 암이랍니다.

by mmyoo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하면서 부산 집에서 며칠 쉬다 영화나 실컷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부산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누워 계시던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하셨어요.


"어 이게 뭐꼬?"

"뭐가 왜?"


엄마는 가슴에 뭔가가 만져진다며 제 손을 당겼습니다. 정말로 오른쪽 가슴에 딱딱한 무엇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암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만져보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암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상하다. 빨리 병원 가보자."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모시고 가고 싶었지만, 저는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엄마는 어느 병원을 갈지 고민을 하시더니, 며칠 뒤 아버지와 부산 B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요즘 유방암은 암도 아니래. 유방암으로 죽었다는 사람 못 봤다. 보험금 탄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생각합시다."


처음 암이면 어쩌지 하며 얘기를 나눌 때는 그저 남일처럼 막연했다는 것을 결과가 나오자 깨달았습니다. 그냥 부산에서 수술하시겠다는 어머니는 막상 결과가 나오니 겁이 나시나 봅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받고 싶은 눈치를 보였습니다.


"그래 내가 막내 언니랑 통화해서 잘 알아볼게"


유방암 수술로 유명하다는 교수님이 계신 큰 병원으로 연락해 예약을 조정하면서 현실감이 밀려왔습니다. 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의 유명한 교수님은 은퇴를 하셨거나, 안식월이거나, 첫 진료를 2달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패스트트랙으로 빠른 예약을 잡을 수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도 가능한 빠른 날짜에 예약을 잡아두었습니다.


아산병원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모가 수술했던 병원에서 수술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모도 유방암으로 아산병원에서 수술하셨거든요. 그러면서도 말씀은 또 다르게 하십니다.


"살만큼 살았잖아."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다잡고,


"무슨 말이야. 엄마! 지훈이, 태규 생각해봐. 그것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죽은 사람은 눈 감으면 그만이야. 그런데 남아 있는 사람은 아니야. 남아 있는 우리들 생각해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해."

"그래 지훈이, 태규 그것들 생각하면 내가 못 간다."


사실 저는 엄마를 참 많이도 미워했습니다. 옛날분이라,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이라는 논리로 저를 괴롭히셨거든요. 뭐만 하려고 하면, 시집 못 간다고 못하게 하셨던 분이십니다. 대학도 시집 잘 가기 위해 가면 된다고 생각하셨고, 유학도 엄마 반대로 포기해야 했거든요.


고3 때였습니다. 3군데 지원한 대학 중에 가장 낮은 대학 한 곳에만 붙어서, 등록금 영수증을 들고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엄마는 서울로 대학을 가면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얼마인지 돈 얘기만 하셨어요. 그저 시집 잘 갈 적당한 대학에 가길 바라셨던 마음이셨을 겁니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한순간도 즐겁지가 않았지요. 원하는 대학이었다면 몰라도 가고 싶지 않은 대학이라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고, 결국 대학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를 결정했지요.

그렇게 대학을 포기하고 잠시 아는 언니가 일하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지요. 며칠을 일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커피숍을 찾아와 제 손을 붙잡고 어디 잠시 가자고 하십니다. 저는 그날 제 손을 잡았던 엄마 손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손에 알 수 없는 긴장과 힘이 들어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제 손을 잡고 데려간 곳이 엄마 친구가 하는 식당이었습니다. 다방에서 일하면 시집 못갈까봐 식당에 취직시켰던 것입니다. 엄마는 그런 엄마였습니다.

물론 말이 식당이지 경양식을 팔던 레스토랑이었고, 워낙 좋은 분들이라 두 달인가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내 삶이 그저 이렇게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날로 서울에 있는 사촌언니네 집으로 도망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조카를 보며 공부해서 대학을 갔으니, 20살 어린 나이에 응어리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러고도 결혼 문제로 여러 번을 싸우고 한동안은 인연도 끊고 살아보았습니다. 인연 끊고 살면 좋겠다 싶었지요. 엄마만 생각하며 가슴에 응어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거든요. 어릴 때는 야단을 맞았고, 커서는 싸웠고, 싸우다가 소리가 커지고 욕도 하고, 그러다 안 보고도 살았지요. 연락도 차단하고...


어머니는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든든한 집에 시집을 보내고 싶었나 봅니다.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네요.


가족이라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에 사정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미웠던 마음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미웠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기억난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들진 않을 텐데....


미웠던 마음도, 미워해서 미안하다는 마음도 아무런 흔적 없이, 그저 빨리 건강해져서 앞으로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