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좀 더 정밀한 검사를 받기 위해 부산 B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3일간 입원해서 MRI와 PET CT를 찍고 암의 전이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검사 받으시는 3일 내내 저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시간 날 때마다 제가 전화를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전화를 하실 틈이 없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제가 전화할 때마다 "왜 또?" 하며 귀찮다는 듯 전화를 받곤 하셨지요. 그러던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립스틱 하나로 스타가 됐다는 거 아니가!."
상황은 이랬습니다. 어머니는 퇴원 준비를 위해 화장을 하셨고, 병원에는 온통 아픈 분들이니 어머니의 립스틱 색이 유난히 돋보였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를 만나는 사람마다 립스틱 색깔 이쁘다는 인사말을 건넨 모양입니다.
"병원에 칙칙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가, 만나는 사람마다 내 립스틱 색깔 이쁘다고 난리다."
이모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 엄마는 아빠를 팽개치고 서울로 오셨습니다. 그때가 학생 때였는지 회사를 다닐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회색 절 바지를 입은 어머니를 따라 아산병원으로 병문안 갔던 기억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참 신기하지요. 같은 병이고, 삶과 죽음의 문제이지만 관계에 따라 그 무게는 다릅니다. 그리고 그 무게에 따라 관계를 다시 확인하기도 합니다.
저는 공공연히 이모를 엄마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사춘기 때 아침마다 어머니와 싸웠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이모집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제때 깨워서 학교만 잘 보내주면 문제가 없는 나인데 어머니는 매일 지각하게 만드셨고, 지각하는 것이 싫어서 엄마에게 잔뜩 투정을 부리고는 울며 헉헉거리며 학교를 갔던 기억들이 아직도 악몽처럼 생생합니다.
엄마와 저는 성격이 반대였지만, 이모와 저는 성격이 비슷했지요. 아침에 잘 깨워서 도시락도 맛있게 싸주었습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모가 싸준 도시락은 생생히 기억납니다. 엄마가 해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의 두부조림과 햄구이 등 친구와 도시락을 통째 바꿔서 먹고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이모집에 있는 내내 아침에 짜증을 내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저는 이모를 엄마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사촌언니와 함께 살 때도 이모가 올라 오셔서, 몇 년간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이모를 엄마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모가 유방암으로 싸우는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이모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모가 잘 이겨내리라 생각했고, 잘 견디시는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혹시라도 돌아가시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국립 암센터에서 발표한 국내 암환자 5년 생존율은 70%가 넘습니다. 암 환자 3명 중 2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고 설명하지요. 생존율은 살아남은 3명 중 2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암환자나 그 가족이 되면 죽은 나머지 한 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3명 중에 1명이 죽는다고?' 그 한 명이 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내 엄마, 내 아빠 그리고 내 자식이 그 한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모를 엄마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했지만, 이모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나와 성격이 더 맞고 더 좋아하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존재까지는 아니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립스틱 때문에 스타가 되셨다는 어머니가 이모 말씀을 꺼내십니다.
"언니가 암이라고 하니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엄마가 언니한테 진짜로 의지를 많이 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지. 벌벌 떨려서 절에 달려가서 주저앉아서 기도만 했지 뭐. 그러고 있으니까 언니한테 전화 오대. 그래서 마 절복 그대로 입고 서울 올라와서 보름간 간호했잖아. 아빠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안보이더라."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시골집에서 뛰어놀던 엄마를 부산으로 데려와 학교를 보내서 공부시킨 사람이 바로 이모입니다. 그렇게 엄마는 이모 밑에서 공부하고 아빠를 만나서 시집가서 우리를 낳고 키우면서 늘 이모 근처에서 함께 살았지요. 그래서 아침마다 싸우며 골치 아프게 하는 딸도 맡길 수 있었고요.
"아이고 암환자가 목소리도 참 씩씩하네."
"그럼 느그 엄마 아직 환자 아니다."
엄마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