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잡을 때 2인실로 하지 마라."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지난번 2인실 병실에서 고생을 하신 모양입니다.
"2인실에는 진짜 못 있겠더라. 딱 둘만 있는데 고역이더라. 엄마가 코 골아서... 옆에 아줌마는 잠을 한 숨도 못 잤단다. 옆에서 항암주사 맞는다고 예민한데 눈치 보여서 영 못 있겠더라. 코를 골아도 두 사람은 골아야지. 아픈 사람들끼리 얘기도 나누고, 아플 때 서로 의지할라면 다인실이 낫다."
어머니 간병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갑니다. 20살 때 서울로 올라와 20년 넘게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동안 KTX를 처음 탔습니다. 아니 예전에 한번 탔던 것 같은데, 불편했던 기억 때문에 더 이상 타지 않았지요. 바쁠 것이 없었던 인생이었나 봅니다. 좌석도 불편하고 요금도 비싼 KTX 보다는 고속버스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프시니까, 제 몸 편한 것보다 한 시라도 빨리 갈 수 있는 KTX를 타게 됩니다.
고속버스를 타면 집에서 터미널까지 1시간, 버스 타고 부산까지 가는데 5시간, 부산에 도착해서 집까지 가는데 1시간을 다 하면, 하루 종일 이동만 합니다. 그에 비해 4시간이면 부산 집까지 갈 수 있는 KTX가 더없이 고맙습니다. 이제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그동안 바쁠 것 없이 살며 교만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부산에 도착해서 집으로 가니, 어머니는 혼자 입원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세면도구와 수건, 속옷 등을 챙겨서 가방에 담아두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입원할 때 이런 것을 챙겨야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병간호를 하겠다고 내려갔지만, 정작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간단한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배정받았습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원하시던 다인실로 배정을 받아 짐을 풀었습니다. 림프절로 전이가 되었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됩니다. 림프절 전이는 몇 개인지, 상태가 어떤지 구체적인 검사 결과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일요일 오후라 의사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머니와 외출을 나왔습니다. 입원이 완료되면 담당교수 허락이 있어야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식 입원 시간을 외출 후로 조정하기로 하고 근처 바닷가를 잠시 거닐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걱정할까 봐 애써 씩씩하신 척하시지만, 순간순간 약해지고 불안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실로 돌아와 환자복을 갈아입으니 저녁밥이 나왔습니다. 저는 도통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드셨습니다.
'그래 엄마 우리 살자. 꿋꿋하게 잘 먹고 꼭 살자. 엄마 없으면 나는 안된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고 있으니, 병실로 전화가 와서 김덕순 환자를 찾네요.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몇 가지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며 간호사실로 불렀습니다. 간호사실로 달려갔더니, 지친 모습의 인턴은 알 수 없는 말을 시작합니다. 어머니 혼자였다면 홀린 듯 그냥 서명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케모 포트 이셔설이랑 비급여 항암제 사용 동의서에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어머니 검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들은 바가 없어요. 어떤 검사를 했는지 결과는 어떤지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인턴이고요. 환자 히스토리는 전혀 몰라요. 지금 동의서만 받으러 온 거예요."
"동의서에 동의를 하려면 내용을 알아야 하죠. 페트 시티는 찍었어요? 결과는 나왔어요?"
"그런 거는 잘 모르겠고요. 담당 간호사실로 전화를 한번 해볼게요."
유방외과 담당 간호사와 통화한 인턴은 내일 담당교수님과 면담이 잡혀 있으니 면담 이후 동의서에 서명하면 된다네요. 피곤하고 귀찮은 표정이 가득한 인턴에게 간호사와 직접 통화해보고 싶다고 다시 부탁을 드려봅니다. 그렇게 겨우 간호사와 통화한 결과 페트 시티는 케모 포트 삽입 다음날 잡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전이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어떤 항암제를 사용할지, 그 용량까지도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어딘지 이상했습니다.
B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다음 주에 예약해두었던 서울대학교 병원 예약을 취소하지 않아 다행히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옳을지 고민이 되어 다시 피가 마릅니다. 어머니는 한 시라도 빨리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원하시지만, 저는 좀 더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HER2 양성의 경우 전세계 프로토콜은 같다고 합니다. 허셉틴이라는 항암제로 HER2 수용체를 우선 잡는 것이지요. 거기에 퍼제타와 다른 항암제를 병용투약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네요. 그래도 종양내과의 정밀한 치료를 받고 싶었습니다.
5인실 병동의 3명의 환자는 담도염으로 수술을 받았고, 1명은 항암치료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필리핀 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분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참는 눈치였습니다. 어머니 눈치를 살펴 필리핀 분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케모 중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6번째 케모 중이었고, 림프절 4개로 전이되었는데 전이가 줄었다고 합니다. 달력을 가르치며 수술을 한다는 것인지? 케모가 한번 남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12월 둘째 주를 가리켰습니다.
담도염 수술을 한 3명 중에 2명은 이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젊은 분들이었는데,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니 계속 병원 올 일이 생긴다며 하소연입니다. 몸이 아프면 건강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는 한없이 낮아지고 겸허해집니다. 아픈 사람 5명이 모여 있으니 서로의 건강을 빌어주는 마음만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그저 어서 건강해지길 빌게 됩니다.
"그냥 서울 가서 치료하세요. 남들은 서울을 못 가서 그라는데, 예약도 되어있고, 따님집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냥 서울 가서 하세요. 어머니 의사 잘 만나야 합니다. 서울이랑 부산이랑은 너무 달라요."
지금 이 순간 5인실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