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길몽

by mmyoo

"엄마!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이 교수님 말만 듣고 그냥 진행하면 내가 너무 후회할 것 같아. 일단 내일 면담하고 최종 결정하자. 내 결정도 존중해줘. 부탁할게"


왠지 불안했습니다. 처음 부산에서 항암치료하겠다고 결정하고 악몽을 꾸고 놀라서 새벽에 깨어났습니다. 무서운 꿈이라 기억도 하지 않았지만, 새벽에 깨서 잠을 통 못 이루다, 9시가 지나자마자 서울대 분당병원을 다시 예약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했거든요. 물론 다시 예약을 잡으면 많이 늦어질 것 같아, 지금의 담당 교수를 믿고 내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시면 불길한 생각이 들고 마음이 복잡한 것이 당연하다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버지 아침을 챙겨드리고, 항암효과가 좋다는 브로콜리도 데쳐서 유리그릇에 담았습니다. 브로콜리에는 설포라판이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데 암의 줄기세포까지 파괴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브로콜리 새싹에 설포라판이 20배가 더 많아서 새싹을 키워보려 종로 종묘상에서 씨앗도 구매했습니다. 물론 당장은 데친 브로콜리부터 챙겨드리려 합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서는데, 담당 간호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담당교수님이 오후에 수술이 있어서, 12시쯤 면담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셔요?"

"네 저는 지금 병원 가고 있어요. 1시간 안에 도착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말씀 드려놓겠습니다."


어머니가 병실에 계시지 않아 간호사에게 물으니 심장 혈류 검사를 위해 핵의학실에 계시다고 합니다. 지하 핵의학실로 달려갔더니, 검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검사실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평소에 내가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아픈 사람들만 간호해야 하는 간호사, 우리처럼 암이나 사망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람들만 상대하는 보험사 직원, 암 진단금을 청구하러 온 눈이 빨개진 아주머니, 그리고 나처럼 암에 걸린 어머니를 만나러 온 아들도.


검사실 옆 의자에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대화 내용이 자꾸 귀로 꽂히네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엄마 건강이나 잘 챙겨라. 나는 괜찮다."

"내일부터 항암 시작한다. 뭐 얼마나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정 힘들면 어디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된다. 엄마는 괜찮다. 니도 건강 잘 챙겨라. 니가 가발만 하나 인터넷으로 주문해주라. 가발이 좋은 거 사려면 너무 비싸더라. 인터넷에는 싸고 좋은 가발이 많다대. 몇 개월만 쓰면 되니까 그런 거 하나만 주문해줘."

"그런 거 못 쓴다. 내가 알아서 해줄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켜서 항암가발을 검색해보게 됩니다. 너무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현실입니다.


검사를 마친 어머니의 안색이 안 좋았습니다. 팔을 위로 들어 올린 채 한 시간 가까이 검사를 진행해야 해서 어깨 관절에 무리가 된 모양입니다. 나중에 페트 시티 결과로 알게 되었는데 어깨에 관절염이 있었습니다.


병실로 돌아오니 초음파실로 가면 담당 교수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담당교수와의 짧은 면담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her2 양성이고, 림프절에 전이가 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Her2 양성 유방암이 얼마나 위험한 케이스인지 이때는 정확히 몰랐습니다. 가족같이 치료해주겠다는 말과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일요일 밤에 페트 시티를 찍었는지 확인했다는 내용을 들은 모양입니다. 페트 시티 얘기부터 꺼냅니다.


"페트 시티는 유방암의 경우는 보험 적용이 안돼서 일단은 안 찍었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화요일에 잡아두었어요."

"림프절 전이가 몇 개인가요?

"...... 림프절에 전이된 암 크기가 2 센티면 저는 3기까지 봅니다."

"서울대 병원 진료 예약이 다음 주에요. 혹시 일주일을 더 기다리면 위험할까요?"

"서울대보다는 아산병원이 수술을 더 잘해요. 아산병원에서 하시죠."


거짓말이었습니다. 모든 암은 중증 특례가 적용되어 PET CT 검사도 5%만 내면 됩니다. 80만 원 가까운 검사를 3만 원대에 할 수 있습니다.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의료보험의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던 사실도 반성합니다. PET CT는 암의 전이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꼭 찍어야 하는 필수 검사입니다. her2 양성 유방암의 병기를 설정할 때는 림프절 전이 수가 영향을 미칩니다. 림프절 전이가 3개 이하일 때는 2기, 4개 이상일 경우 3기, 뼈나 폐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을 때는 말기암이라고 하는 4기입니다.

물론 2기냐, 3기냐 하는 병기 설정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빨리 치료해서 건강해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어머니가 굳이 자신의 병을 속속들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낫는다는 마음으로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담당 교수가 그렇게 했을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서울대학교 진료는 1주일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진료하고 항암치료까지 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같은 항암제 치료라면 한시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도 그것을 원하고요. 하지만 왠지 이 교수만 믿고 항암을 시작하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감쌉니다. 피가 마릅니다.


엄마를 병실에 모셔다 드리고, 한 시간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빨리 동의서에 서명해달라고 하는 간호사에게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한 시간만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좀 걸으면서 생각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어린 간호사였는데, 저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 순간 그 표정이 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어주었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걱정말고 신중히 잘 판단해서 선택하라는 표정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바닷가를 걸으며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아니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복잡한 변수들이 생각할수록 심장을 압박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서울에 가서 한번 더 얘기 듣고, 종양내과의 전문적인 치료를 진행하자고 결정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냥 직관을 따르자고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동의서 서명을 독촉하는 모양입니다.


"서울로 가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제가 모시고 가서 옆에서 치료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오셔서 필요한 서류 말씀해주시면 준비해드릴게요."


그렇게 차분히 필요한 서류를 하나하나 챙기며 준비해주었던 간호사님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녀는 제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치료 기간 내내 어떤 분들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엄마 내일 페트 시티까지 찍고 서울대 가서 치료하자."

"그래 마 니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어머니 마음도 반반일 겁니다. 어머니 자신도 목숨을 건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엄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엄마 살릴 거야. 걱정하지 마.'


아침에 일어난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인 나에게


"엄마 좋은 꿈 꿨다. 맑은 물 틀어서 그릇을 씻어서 쌓아두더라. 반은 씻어서 쌓아두고, 나머지 반은 잘 불려서 씻자 하고 깼다."


아버지에게도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좋은 꿈 꿨다.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서 시골길로 돌아 돌아가다, 고속도로 진입해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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