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한 복판,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습니다. 한쪽 벤치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눈치챌 수 있습니다. 한참 울던 그녀는 눈이 빨개져서 어딘가로 걸어갑니다.
20대에 그녀를 보고 이별을 했나 보다 생각했어요. 얼마나 아픈 이별을 했기에 이렇게 사람 많고 복잡한 강남역 한복판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저도 아픈 이별을 하고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새롭게 보는 순간이 있어지요. 저 사람도 이별의 아픔을 겪었겠지 하며 그렇게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였습니다. 부산 고향집에 놀러 갔다가 지하철에서 고등학교 친구 지연이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학교 다닐 때 참 밝고 귀여운 아이였는데, 어딘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서울로 대학을 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재수를 하는 통에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친구입니다.
지연이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부산에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에 다시 입학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간호를 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전공을 바꾸고 다시 공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당시에는 지연이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옛 친구가 반가워 연락이라도 하고 지내고 싶었는데, 내 연락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으로 헤어졌지요.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지연이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공부 따위, 대학 따위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지는 그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날 연락처도 묻지 않았던 지연이의 심정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철없이 놀러 다니는 저와 연락하고 지낼 여력이 없었을 그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저는 어머니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와 치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모자도 사야 하고, 요양병원도 알아봐야 하고, 원자력병원에서 파는 암환자 치료식도 알아봤습니다. 깨끗한 거즈에 브로콜리 씨앗을 뿌리고 물을 뿌려 싹이 나도록 기다리고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솔직히 아직은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런 저에게 누군가가 웃으며 한마디 하십니다.
"내가 우리 집에서 동생 항암 치료하는 거 간호하다가 고혈압을 얻었잖아."
엄마가 암에 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또 달라졌습니다. 빼곡한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출퇴근 시간 무거운 어깨가 버거워 보이는 사람들, 그래도 묵묵히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 예전에는 그들을 보며 왜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그렇게 철없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들도 나처럼 엄마가 아팠거나, 아빠가 아팠거나, 아내, 자식, 혹은 형, 동생이나 누나가 아팠겠지요. 어쩌면 강남역에서 울고 있었던 그녀도 이별이 아니라 엄마가 아팠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슬펐고, 삶에 더 치열 해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