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CT를 찍어야 해서, 아침 금식을 하고 1리터의 물을 마셔야 한다네요. 컵에 물을 따라서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참 말을 안 듣는 사람입니다. 검사실 가면 또 물 마시라고 한다며 굳이 한 잔만 마시겠답니다. 저는 이런 엄마가 너무 버겁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단단한 벽 같은 우리 엄마.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엄마가 너무도 버겁습니다.
속이 상해 있는 저에게 간호사가 괜찮다고 하시네요. 600ml 정도 마셨다고 하니 괜찮다며 눈을 찡긋해주십니다.
'그래 인명은 재천이지. 물 한 잔 더 마신다고 달라질 것이 뭐 있겠어.'
그렇게 어머니를 검사실로 모시고 갔습니다. 검사가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 저는 병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검사실을 빠져나왔습니다. 병실로 올라가 가방을 챙겨서 송도 바닷가로 걸어갔습니다. 서울로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그래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며칠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김밥도 한 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침을 안 먹었더니 속이 쓰리다. 가서 두유 하나만 사다 주라."
검사를 마친 어머니는 병실에서 주무시고 계시다, 저의 인기척에 일어났습니다. 생리식염수를 맞고 계셔서 제가 오길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얼른 달려가 두유와 요구르트 등 간단한 먹거리를 사 와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저는 병원을 옮기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챙겼습니다. 영상 CD는 지난번에 미리 만들어두었다고 해서, 세포 조직 슬라이드와 진료기록지만 챙겼습니다. 오늘 찍은 PET CT 결과는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확인했습니다. 돌아오니 어머니는 점심 식사 중입니다. 씩씩한 덕순씨는 고맙게도 오늘도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드십니다.
병원비를 결제하고 퇴원수속을 밟았습니다. 5인실에 있었던 덕분에 병원비도 10만 원이 넘지 않습니다. 총진료비 129만 원 중에 본인 부담금은 단 85000원이었습니다. 80만 원가량의 PET CT 검사비는 겨우 38000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엄마 나 비빔밀면이랑 만두 먹고 싶어."
어머니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와 처음으로 딸처럼 먹고 싶은 음식도 말해봅니다.
"그래 부산역 가서 밀면 먹자. 엄마는 밥 먹었으니까 니 혼자 먹어라. 알았제?"
"집에 가서 짐 나누고 다시 나오자."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가는 길에 또 사건이 생겼습니다. 차도 옆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배 쪽에 파리가 꼬여 있어서 죽은 시체인 줄 알았는데 꼬리를 움직입니다. 눈도 깜박이는 것이 보입니다. 서울에서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연락을 취하는 곳이 있는데, 부산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우선 부산 동물구조를 검색해서 연락을 해보았지만, 연결되는 곳이 없었습니다. 119로 전화했더니, 110번으로 전화해보라고 합니다. 110번으로 전화를 하니 서구청으로 전화하라고 합니다. 다행히 서구청 직원이 담당자에게 전달해서 구조할 수 있도록 하겠답니다. 오늘 밤을 넘기면 분명 죽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빨리 구조해주길 기도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양이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 아이를 구조하면 복이라도 받아 어머니께서 더 잘 치료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고양이 구조 신고하신 분이죠? 거기 위치가 정확히 어디예요?"
"B병원에서 내려올 때 고가 사이의 가운데 길이에요. 거기가 복잡해서 사람은 들어갈 수도 없더라고요."
"혹시 지금 근처에 계시면 구조해서 근처 파출소에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접수가 밀려서 구조하려면 한두 시간 걸릴 것 같아서요."
"제가 지금 가도 한두 시간 걸릴 것 같아요. 어쩌죠. 저도 고민 좀 해볼게요.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전화는 끊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근처 파출소로 가서 도움을 요청해서 아이를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엄마 갔다 올게. 파출소로 가서 얘기해보고 구조해보지 뭐."
"엄마가 같이 갈까?"
"아냐 혼자 갔다 올게. 박스 하고 비닐장갑만 챙겨줘."
버스를 타고 고양이가 있던 장소로 갔습니다. 고가 사이에 있는 길이라 인도에서는 자세한 상황을 볼 수가 없어, 일단 파출소를 찾아서 뛰었습니다. 파출소에 들어가 젊은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씨부리고 있어!"
평상복을 입은 한 아저씨가 대뜸 욕을 합니다. 파출소에 지인이 있는지 놀러 와서 경찰들과 수다를 떨던 아저씨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간상입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흔한 인간군상의 아저씨.
"착하신 분인가 보네..."
다른 경찰관들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며 출동하려고 준비하자 그분도 태도를 바꾸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이런 식입니다.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말을 바꾸는...
젊은 경찰관 한분과 조금 나이가 있는 두 분의 경찰관이 경찰차로 함께 가주었습니다. 운전하던 젊은 경찰관은 파란색 비닐장갑을 꼈습니다. 파란색 비닐장갑을 끼는 그 모습이 왠지 비장해 보여 위안이 되었습니다. 고양이가 있던 장소에 도착했는데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하여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다행히 조금 아래로 자리를 옮겨 누워있었습니다. 배에 상처가 깊었고 파리들이 꼬여 있었습니다.
파란 비닐장갑의 경찰관이 고양이를 들려 하자, 누워있던 고양이는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온 힘을 다해 하악질을 합니다. 놀란 경찰관이 뒤로 물러서자 제가 고양이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눈을 바라보고 '괜찮다 괜찮다. 너 살려주려고 왔다'라고 얘기하자 고양이도 마음을 놓는 눈치입니다. 그렇게 고양이를 들어 올려 박스에 담아 다시 파출소로 이동해, 동물구조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까 고양이 구조 때문에 연락했던 사람입니다. 일단 제가 구조해서 박스에 담아 송도 지구대로 옮겼어요. 혹시 언제쯤 오실 수 있을까요? 지금 병원으로 가면 살릴 수는 있을 거 같아요. 아직 살아 있어요."
"그래요? 그럼 지금 접수가 많이 밀렸으니까... 일단 저라도 가볼게요."
그렇게 파출소를 빠져나와 집에 도착하니, 경찰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S지구대입니다. 금방 동물협회 관계자분이 지구대 도착하여 고양이 안전하게 데리고 갔습니다.'
제가 그곳까지 가지 않았다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분이 직접 나서서 오시지 않았을 겁니다. 구조대들은 퇴근을 했을 거고요. 그렇게 길에서 오늘 밤을 보냈다면 고양이는 분명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겁니다. 물론 고양이가 구조되어 병원을 잘 가서 목숨을 구했을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니 두려운 마음에 확인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제 몫을 다하면 다음은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겠지요. 밀면을 먹으러 갔다면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했을 겁니다.
인명은 재천이지만, 지성이면 감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