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그래 결정은 내가 해야 해. 마음 단단히 먹자

by mmyoo

"아니 내가 9월에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데"


덕순씨는 9월에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유방암 검사도 하셨답니다.


'좌우비대칭'


어머니께서 가지고 온 건강검진 결과표에는 별 다른 이상 소견은 없고, '좌우비대칭'이라고만 적혀있었습니다.


오진인지, 한 달 만에 이렇게 크게 자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좌우비대칭'이라는 단어가 왠지 오진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합니다. '좌우비대칭'이 대표적인 유방암 증상인데, 병원에서 한 번쯤 의심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건강보험으로 진행하는 건강검진이라 어딘지 형식적으로 대충 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덕순씨는 씩씩하게 화를 내십니다. 건강보험에서 운영하는 검사에 허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들 국가에서 돈만 빼먹고 이렇게 대충 한다. 00병원도 큰 병원이라고 갔드만 썩었다. 인간들. 하나하나 다 정신 차려야 돼"


오진이라고 한들 우리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소송을 한다고 오진임을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없거든요. 의료소송에서 이기는 일이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의사들 사이의 카르텔이 공고히 형성되어 있어, 오진이라는 소견을 받을 수도 없고, 그것을 밝히려 소송하는 과정에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힘들 것이 뻔하니까요.


어쨌건 9월 1일 검사 결과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암 덩어리가 한 달 만에 손에 잡힐 정도로 커졌다면 엄청 빨리 진행하는 암세포라는 것인데, 그때 발견만 되었다면 훨씬 쉽게 치료가 가능했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복잡해집니다.


저에게도 일상이 있는데 도통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새로 쓰는 책에 집중해야 하는데, 영 글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온통 엄마와 유방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해 버렸습니다. 책을 보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무의식 중에 유방암에 관한 영상을 검색해서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몹쓸 알고리즘 때문에 유방암을 한 번 검색했더니, 유방암과 관려된 영상들이 유튜브를 볼 때마다 초기화면에 한 두개는 떠 있네요. 차라리 좀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책을 덮고 유방암을 검색해서 영상도 보고 글도 읽어봅니다.


유방암 검사와 치료 절차에 관해서는 아산병원 유튜브 채널에 유방암 환자와 보호자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가장 자세합니다.


'제발 비침윤성 유방암이게 해 주세요.'


유방암 공부를 하고는 기도 내용이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우선 유방암은 임파선이나 혈관을 타고 주변 장기로 전이가 되는 침윤성 유방암과 주변으로 전이를 되지 않는 비침윤성 유방암이 있습니다. 전이가 되지 않는 비침윤성 유방암은 크기와 상관없이 0기라고 하고 여러 면에서 유리합니다. 그렇게 제발 전이되지 않는 비침윤성 유방암 이길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성호르몬 수용체에 반응하는 암세포도 있고, her2라는 수용체가 암세포를 빨리 자라게 하는 경우도 있어서 검사를 해야 합니다. 4명에서 5명의 유방암 환자 중 1명 꼴로 her2 과발현이라고 합니다. 각각의 경우에 따라 치료 방법과 항암제가 달라지기 때문에 검사 과정도 시간도 꽤 걸립니다. 절실해지니 이렇게 학습능력이 좋아지네요.


어머니는 서울에 올라오시기 전까지 B병원에 입원해서 기본적인 수술 전 검사를 받으시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입원을 해서 MRI와 CT를 찍어서 림프절 전이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유방암의 원인은 사실 이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암이 걸렸는지 물으면 원인보다는 치료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고 한계가 있는 말이기도 하지요.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냉정해지자고 진정해봅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담담히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부산 복음병원으로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담당 간호사는 오늘 CT 촬영하고 교수님 면담할 때 직접 통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진료할 때 교수님과 통화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몇 시간 뒤 어머니 전화가 와서 담당교수님을 바꿔주셨습니다. 통화의 핵심은 CT 촬영 결과 임파선 전이가 의심된다며 이럴 경우 항암치료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B병원에서 항암치료를 1, 2회 진행하고,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분당병원의 진료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도 하셨고요.


항암치료 도중에 아산병원으로 트렌스퍼가 가능할지 우선 물어보았습니다. 치료 도중에는 트렌스퍼가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럼요. 제가 손병호 교수님 제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다 됩니다."


담당교수님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믿고 싶었고,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서울의 먼 거리 병원에서 외래진료로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아무래도 걱정이었는데, B병원은 항암치료도 입원해서 진행하고, 부산 집에서도 가까우니 가장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었습니다.


서울대 분당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진료 예약을 취소해야 합니다. 이왕 예약해놓은 것 진료라도 볼까 생각도 들지만,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치료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취소를 해주어야 다른 환자가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요.


며칠간 고민을 너무 했더니 힘이 빠지고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침 사촌언니가 집으로 온다고 해서, 함께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숨통이 좀 트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밥을 먹고, 성북천 근처 전집에 가서 깻잎전에 막걸리도 하나 시켰습니다. 막걸리 한 잔에 깻잎 전을 먹으니 맛이 좋네요. 사는 것 별거 없다는 생각에 엄마가 빨리 치료를 마치고 별 일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그렇게 겨우 마음을 놓았는데,


"그냥 서울대 분당병원도 가볼까? 항암 치료하면 몸이 안 좋아질 텐데, 아산병원에서 수술 안 해준다고 하면 어짜노? 나이 많다고 안 해주면 어짜노?"


어머니가 전화를 하셔서 고민을 하십니다. 겨우 사그라진 고민이 다시 들고일어납니다.


'그래 어쩌지? 진료라도 받아볼 걸 그랬나? 서울대 분당병원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라도 볼걸...'


내 마음도 흔들립니다. 서울대 분당병원의 패스트트랙을 도와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혹시 예약 취소를 변경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는데,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말 한번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 의사가 그렇게까지 얘기해서 결정했으면 믿고 마음 강하게 먹고 흔들리지 마! 네가 정신 차려서 엄마를 설득해야지. 너까지 흔들리면 어쩌니?"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다행히 주변에 알아보니 요즘에는 유방암 치료할 때 항암치료를 먼저 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래 일정에만 문제가 없으면 잘 한 결정일 거야.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알아보고 결정하고, 결정했으면 책임감 있게 행동하자. 믿자! 단전에 힘주고 정신 차리자!'


그렇게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고 단전에 힘을 꽉 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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