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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Jan 15. 2020

그림의 떡 '돌봄교실'.."기대않고 학원으로"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김소희(35세) 씨는 최근 아이 문제로 남편과 크게 다퉜습니다. 맞벌이 가정이라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돌봄교실'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모집 정원이나 조건 등을 보니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학원을 알아보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어린 애를 학원 셔틀버스에 태워 그렇게 뺑뺑이를 돌려야겠냐, 회사를 쉬라'고 핀잔을 주면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2020학년도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 끝난 후 예비 1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의 학부모들 사이에선 학원 스케줄 짜는 게 화두입니다. 한 학년 전체 정원의 5분의 1도 채 뽑지 않는 방과 후 돌봄교실만 믿고 있다가 개학 후 소위 '멘붕'에 빠질 게 뻔하기 때문인데요. 얼마전 교육부에서 초등학교(이하 초등) 방과 후 돌봄교실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부모들은 현실에선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돌봄교실 매년 700개 확충..그래도 수요 못 따라가


교육부는 최근 신학기 초등 돌봄교실을 700개 확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돌봄교실은 지난해 1만3910개에서 1만4610개로, 돌봄교실 이용 학생은 전년 29만358명에서 30만4000명으로 늘어날 예정입니다. 


돌봄교실은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이 끝난 후 돌봄의 공백이 생기는 아이들을 전담해 돌봐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전담 선생님이 각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보살펴 줍니다. 맞벌이 가정에는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는 정책임에 분명합니다. 


정부는 매년 초등 돌봄교실을 700개씩 늘려나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체 267만 여명에 달하는 초등학생 중 돌봄교실을 포함해 정부의 초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아동은 33만 여명, 12.4%에 불과합니다. 


송다영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성평등한 저출산기본계획의 방향과 과제: 돌봄 영역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맞벌이의 돌봄 수요는 46만~64만명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초등 돌봄 30만명 △다함께돌봄 5000명 △지역아동센터 11만3000명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1만명 등 33만명(2019년 기준, 중복 포함)으로 공급이 수요를 절대적으로 못 받쳐주는 상황입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위)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눠준 돌봄교실 운영 안내서

실제로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1학년에 입학 예정인 학생 100여 명 중 20여 명(1, 2학년 통합 44명 예정) 정도 돌봄교실에서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역시 전체 1학년 학생 수는 200여 명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는 1학년 학생은 38명뿐입니다.


정원은 적은데 신청인원은 많다보니 각 학교에서는 우선순위(1.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 한부모 가정 3. 법정차상위대상자 4. 맞벌이 가정)에 해당하는 학생을 먼저 배정한 후 남은 인원에 대해 추첨으로 채우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맞벌이 가정의 학생은 주로 추첨에서 운이 좋아야 들어가고요. 간혹 4순위인 맞벌이 가정까지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무주임 교사는 "올해 특히 맞벌이 가정이 많아 예비 1학년 중 120명 정도 돌봄교실을 신청했는데 정원은 40명뿐"이라면서 "돌봄교실 경쟁률이 셀 거라는 공지에 일부 학부모가 불만을 제기했지만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 부모들은 한 건물에서 3~4개의 학원을 갈 수 있는 곳을 선호합니다.

◇학부모 "돌봄교실 이미 포기..차라리 학원 알아보는 게 현실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예 돌봄교실을 신청하지 않고 사설 학원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돌봄교실 추첨과 대기까지 기다렸다가 정작 개학 시기에 다다라 학원마저 보내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섭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민경(39세) 씨는 "돌봄교실을 확대한다고 하길래 한 학년 정원의 절반 정도는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하지만 학교 안내문을 보니 이건 거의 그림의 떡일 정도로 적게 뽑아 돌봄교실은 포기하고 아이가 다닐 학원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워킹맘 박지현(36세) 씨도 "돌봄교실이 안 될 것 같아 학원을 알아보니 하루에 학원 5개를 보내야 내 퇴근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지더라"면서 "왜 엄마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회사를 그만두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민혜원(41세) 씨는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낼 때와 비교하면 정책이 좋아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좋은 정책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소수라는 점에서 보통의 맞벌이 부부들의 현실은 나아진 게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선 정부가 돌봄교실 확충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를 키우는 이현종(42세) 씨는 "워낙 수요가 부족하다 보니 정부가 돌봄교실 수 늘리는 데만 너무 중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돌봄의 질이 떨어진다면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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