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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Mar 10. 2020

[옆집언니 육아일기]회사를 그만둔 월요일

회사를 그만 뒀지만 눈 뜨는 시간은 그대로다.


"아, 아직 6시도 안됐네" 


회사를 그만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습관이 무섭다고 매일 같이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번쩍 떠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잠을 자려고 했지만 워낙 정신이 말짱해서 잠을 청하는 게 더 괴로웠다. 


평소와 같이 씻고 옷 입고 아침을 준비했다. 분명 회사를 안 가도 되는데 마음이 여전히 바쁜건 왜일까. 사직서는 수리됐지만 내 마음은 아직 사직서를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아침을 다 하고 나서 보니 어질러진 집안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 같았으면 대충 큰 물건만 정리하고 출근하기 바빴을 테지만 이제 직업이 바뀐 만큼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이 지저분한 바닥을 닦고 싶어 째려보기만 수십 번이었다. '드디어 널 정복하는구나!' 쾌감에 젖어 거실 바닥을 다 닦았을 때쯤 태평이 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뚜벅뚜벅 찰칵.


"아! 엄마다~~~~ 엄마!!!!!!!!!!!!!!!!!"


태평이가 내가 와서 와락 안겼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는데 엄마가 있으니까 참 좋다'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말이다. 이런 게 진정한 행복이지! 태평이 소리에 남편도 일어나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각이 잦았던 남편은 오늘은 회사에 일찍 가서 동료들을 놀래 주겠다며 아침도 먹지 않고 부리나케 회사로 갔다. 그를 보며 잠깐 '아, 내가 없어서 부서원들이 아침에 더 바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착각하지 말자'며 접어버렸다. 나 없어도 회사는 팽팽 잘 돌아갈 게 뻔하다. (ㅎㅎ)

평일 처음으로 여유롭게 준비한 아침


태평이와 오래간만에 평일 아침에 둘이 앉아 아침을 먹었다. 태평이는 의외로 아침밥을 먹으며 수다를 많이 떨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비롯해 몇 년 전 얘기까지 떠올리며 수다가 이어졌다. 한참을 태평이의 말에 호응해 주자 시간은 등원 시간인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강박 때문인지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태평이를 여러 번 달래 밥을 겨우 먹이고, 과일을 먹고 싶다는 아이를 말려 옷 입고 벗기기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어린이집 문턱을 볼 수 있었다.  


내 얼굴을 본 어린이집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일 1, 2등을 다퉈 등원하던 아이가 지각을 한데다 엄마가 등원을 시키니 놀란 눈치였다. 교실 창밖으로도 나가는 나를 배웅하며 태평이는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받은 하트보다 더 큰 하트를 날려주고 어린이집 대문을 닫고 나오는데 진이 빠졌다. 순간 지난 몇 년간 이 일을 하고 출근했을 남편이 떠오르며 마음이 살짝 시려왔다. 착한 아빠라 태평이의 폭풍 수다를 끊지 못했을 테고 과일이나 밥을 더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나처럼 '다녀와서 먹자'고 거절하지도 못했을 거다. 그러니 지각이 잦았겠지. 그것도 잘 모르고 직장인이 매번 왜 지각을 하냐고 핀잔을 줬던 나를 반성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태평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후 첫 여유로운 등원길이 아니었을까


감상도 잠시 집 문을 닫는 순간부터 신발이 마구 섞여있는 신발장부터 장난감이 뒤죽박죽 담겨 있는 놀이방 서랍, 옷장까지 정리해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홧팅'을 외친 뒤 눈앞에 있는 신발장부터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버릴 물건, 세탁할 물건, 정리할 물건....' 


거짓말 조금 보태 수 천 번의 손놀림 끝에 신발장과 태평이 놀이방까지 얼추 정리가 됐다. 잠시 쉬려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시계를 보니 회사에서 있었으면 이미 점심을 먹고 들어왔을 시간. 부랴부랴 아침에 먹었던 밥을 꺼내 먹었다. 대충 혼자 먹는 밥에 살짝 기분이 처지려고 할 즘 동기에게서 카톡이 왔다.


'집에서 쉬니까 좋아? 점심은 뭐 먹어?'


'좋지. 집밥^^'  


이라고 웃음 이모티콘을 보냈지만 표정은 웃고 있지 않은 나는 대체 지금 어떤 감정인 걸까? 


답을 내지 못하고 다시 옷장 정리를 하려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게 생각났다. 그래도 사직서 낸 이후 첫 월요일인데 홈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우아하게 마셔야지 하며 들었던 옷을 다시 내려놨다. 


커피를 타서 예쁜 잔에 담아 창밖을 보며 한 모금 마셨다. '음.. 커피는 남의 타주는 커피가 역시 맛있네' 생각보다 혼자 마시는 홈 카페 커피는 그리 달지 않았다. 오히려 썼다. 

역시 커피는 남이 타주는게 맛있고 이쁘다


옷장까지 정리하고 나니 태평이를 데리러 가기로 한 오후 3시가 돼 있었다. 얼른 준비를 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분명 이전보다 몇 시간이나 일찍 데리러 가는데도 잰걸음으로 걸으며 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나를 보며 '이건 성격인가'하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어? 태평이 엄마네? 태평아 엄마 오셨어!"


같은 반 아이들도 내가 빨리 데리러 온 것이 신기한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태평이를 불렀다. 이미 나갈 준비를 마친 태평이는 나에게 와서 보고싶었다며 또 한 번 와락 안겼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놀이터에 다다랐다. 조금 기다리자 하나둘씩 친구들이 모였다. 


3시간을 넘게 신나게 놀고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평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 뭐 했어?"


"청소"


"회사 안가서 심심하진 않았어?"


"바빴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첫 월요일, 그간 보지 못했던 태평이의 모습을 봐서 행복했다. 더해.. 심심하지 않고 오히려 바빴는데 그렇다고 너무 재미있지는 않고 허전하기도 한 그런 하루였다. 내일은 달라질까?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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