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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Mar 19. 2018

복지천국 스위스 엄마, 한국 어린이집에 반한 이유는?

율이는 한국 어린이집에서 윷놀이를 처음 듣고 처음 해봤다.

1편에서 계속(☞스위스 새댁의 '좌충우돌' 한국 어린이집 적응기)


점심때 즈음 잘 놀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안심하고 있다가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되자 다시 불안해져서 차량이 오는 장소로 미리 나가 있었다. 문득 문자 한 통이 온다. '10분 후에 도착합니다' 아! 이런 배려라니...


차량 따위 운행하지 않는 스위스에서는 생각도 못 할 서비스다. 부모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가거나 아예 도보로 가능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도보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온다. 그 길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도 아이는 나무와 꽃 혹은 길 위에 있는 지렁이를 보며 그날그날 날씨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엄마 입장에선 이렇게 아이와 함께 자연의 변화를 만끽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여유 없이 아이를 재촉하는 길이기도 하다.


적응이 염려돼 학원 등록을 포기한 것이 무색하게, 첫날에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온 아이가 대견했다. 식판을 씻는 것이 은근히 일이라는 말을 인터넷에서 접했기 때문에 얼른 가방을 열었는데 그 속에서 알록달록한 알림장이 나온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식사는 잘했는지, 낮잠은 얼마나 잤는지 선생님이 일일이 써 주는 알림장이다. '세상에! 이걸 아이마다 일일이 기록한단 말이야?'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스위스 어린이집의 낮잠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휴대폰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밀린 사무야 어디든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아이 하나하나에 대해 기록하는 잡무는 없다. 처음에는 데리러 가면 식사는 잘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 얘기해줬지만 그것도 아이가 적응 할 때까지만 이었다. 그래서 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꽤 되자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부모와 오래 얘기를 한다면 그날 아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했다. 이것이 스위스와는 다른 한국 어린이집이로구나, 감개무량하면서 보육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찮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ㄷ 어린이집은 월요일에는 요가, 수요일에는 영어 그리고 금요일에는 음악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율이는 거기에 낮잠 후 미술놀이를 더 하기로 했다. 요가와 음악은 이해가 됐지만 영어라니, 또 한 번 한국 학부모임을 실감했다. 스위스에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고어(古語)인 로망스어 등 4가지 공용어가 있다. 독일어가 수적으로 우세하므로 독일어권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가 제1외국어가 되는 셈이다. 덕분에 웬만한 스위스 사람들은 실생활 프랑스어가 가능하다. 사실 독일어가 모어라면 프랑스어보단 영어가 비교적 수월한 것도 이유일 것이다.

스위스 어린이집에서 비가 오나 추우나 꼭 하는 바깥놀이. 비 오는 날 장화와 방수 활동복은 필수다.

우리 아이들은 태생부터 한국어가 추가됐으니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모국어를 갈고닦아야 할 시기에 이렇게 조금씩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과연 큰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 역시 어렵게 영어를 배운 한 사람으로서 한국 부모들의 절박함은 이해가 됐다. 그 시간이 효과를 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에게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하우 아 유 투데~ 하우 더 에더 투데~잇 써니 투데...' 보육료 외에 특별활동비가 솔찮게 든다고 생각했는데, 그 비용이 빛을 발한 순간이랄까.


한국 어린이집에서 율이를 제일 기쁘게 한 것이라면 단연코 현장학습일 것이다. 처음으로 키즈카페에 가 본 율이는 아니다 다를까 다녀오자마자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신나게 얘기했다. 눈썰매장에 간 날도 몇 번을 탔는지, 누구와 같이 탔는지 말해 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을 알려줬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사진이 전용 앱에 업로드돼 확인할 수 있었다.


스위스 어린이집에서도 이런 식의 현장학습 프로그램이 있으나 동네 박물관 견학 정도의 수준이다. 대신 하루에 두 번은 꼭 바깥놀이나 산책 시간이 있다. 바깥활동을 중요시하는 유럽식 교육철학에 따른 것이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추운 겨울에는 털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하고서라도 꼭 나가서 시간을 보낸다.


매섭기로 유명한 한국의 겨울이지만 이곳에선 어린이들의 실내활동 시간이 유독 긴 것 같기는 하다. 어린이집도 특별활동이 아니라면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도 놀이터에서 논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학부모들이 사진으로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은 좋았다.


이렇게 ㄷ 어린이집을 다니며 아이는 어느 날은 친구와 싸우고 시무룩해져 돌아오기도 하고 가끔은 등원을 거부해 엄마와 할머니 애를 먹이기도 했다. 김치를 못 먹어 걱정했는데 어느 날부터 김치를 다 먹었다며 칭찬해 달라고도 했다. 이렇게 한국 아이다운 매일매일을 보내던 어느 날, 사정이 생겨 예상보다 빨리 스위스로 돌아가게 됐다.


갑작스럽게 소식을 전하고 아쉬워하시는 듯한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에 마지막 날 간식을 잔뜩 챙겨 보내며 그동안 감사했노라고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이 정도가 괜찮았던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데, 학부모로서 무엇을 드리면 좋을 지에 대해 무지했던 탓도 있었다. 마지막 날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의 가방에는 담임 선생님의 정성 어린 카드와 예쁘게 포장한 과자선물이 들어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카드를 읽어주기 시작하다 목이 메어 미처 다 읽어주지 못한 기억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친구 하나하나와 포옹하며 인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올려주신 정성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국 어린이집에서의 세배 시간. 원장 선생님께 세배하고 세뱃돈 받기를 한다. 아이 하나하나에게 복주머니에 넣어 세뱃돈을 준 어린이집의 정성에 감탄했다.

스위스에 돌아온 후 율이는 자주 한국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어느 날 어린이집 이름을 말하며 'ㄷ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했을 때에는 불현듯 내 유치원 시절이 기억났다. 나도 저렇게 유치원 이름의 어린이라고 불렸었지. 그래, 목적 달성이구나.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바르게 앉아서 경청하고, 한복을 입고 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으며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이런 일상적인 한국 문화를 생활 속에서 익히는 것, 이것이 바로 아이를 한국 어린이집에 보내고자 했던 목적이었다.


한국 어린이집에서 생활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이와 공유하는 문화적인 부분이 부쩍 커졌음을 느낀다. 좋은 시설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 것, 딸과 손녀의 한국 생활을 위해 둘째 아이를 전담하여 봐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친정부모님의 정성을 확인한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스위스에서의 우울한 겨울이 아니라 모처럼 보람되고 감사한 일로 가득했던 한국의 겨울이었다. 영하 15도의 강추위마저 한국다운 겨울같아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면 믿으실런지. 단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던 느낌만 빼고 말이다.


바젤=김선진 객원기자  reunite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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