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 비교체험 '극과 극'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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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처음부터 바짝 잡으려고. 힘들어서 안되겠어

지난해 둘째를 낳고 딸 둘 맘이 된 친구는 첫째를 키울 때만 해도 나와 교육관이 완전히 다른 '천사 엄마'였다(꾸준히 내 글을 읽어온 독자들은 아시겠지만 난 '독한 엄마'다). 하지만 둘째를 낳으면서 돌연 태도를 바꿨다. 둘을 키우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첫째처럼 자유롭게 키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친구는 나와 대학을 다닐 때부터 친했다. 보통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사는 환경이 달라지면 친구와도 멀어지기 마련인데, 희한하게도 이 친구와는 결혼과 임신을 비슷한 시기에 하면서 이전보다 더 막역한 사이가 됐다. 태교는 물론 2주 간격으로 아이를 낳아 같은 조리원에 있었다. 게다가 둘 다 딸을 낳았으니 이 정도면 얼마나 끈끈한 사이인지 말 안 해도 짐작이 갈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관'은 완벽히 달랐다. 나는 '아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 지켜야 할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화를 내거나 때려선 안되지만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훈육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배경엔 어린 시절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면서 당시엔 힘들었지만, 결국 내게 더 큰 장점으로 돌아왔다는 경험이 있었다.


반면 친구의 육아관은 '아이가 스스로 알고 깨우칠 때까지 하고 싶은 대로 놔둬야 한다. 기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세 살이며 그때부터 훈육해도 늦지 않다. 유아시절의 자유로움이 창의력을 키우고 스스로의 판단하에 행동하는 것이 주체감을 키운다' 였다. 그 역시 이런 육아철학을 갖게된 이유가 있다. 어린시절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면서 한껏 풀이 죽어 인생의 기로에서 항상 주체적이고 과감한 판단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815_1485_5547.jpg 3살 태평이의 밥 먹는 모습. 지금도 태평이의 먹방은 누구에게나 입맛을 당기게 한다.

서로 다른 육아 철학이 가장 많이 드러난 건 '밥상머리'에서였다. 나는 이유식 초기부터 무조건 의자(범보 포함)에 앉혀 제자리에서 먹는 습관을 들였다. 의자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달랜 다음 다시 앉히는 것을 반복했다.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명했다(사실 돌전엔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생후 8개월이면 말을 못할 뿐이지 대충 분위기 등으로도 상대방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 지나 이유식 완료기 즈음부턴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거나 편식을 하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남은 음식을 버린 다음 끼니때까지 밥은 물론 간식도 주지 않았다. 물론 나의 행동에 대한 설명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마음이 여린 엄마들은 여기서 아이에게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우유 등 간식을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독한 엄마다..) 식사 시간엔 TV나 핸드폰 등 동영상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 모든 밥상머리 교육의 최종 목표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 하루간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지난 5년간 중간중간 고비는 있었지만 잘 버텼고 이제 저녁 시간이면 셋이서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한다(물론 가끔 태평이도 밥 먹기 싫어할 때가 있다. 그럴땐 쿨하게 먹지 말라고 한다. 어른도 밥맛이 없을 때가 있는데 아이라고 그러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사춘기가 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기의 목표는 달성했다.


반면 친구는 자신의 육아 철학대로 아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 자리에 앉기 싫다고 하면 돌아다닐 수 있게 했고 쫓아다니면서 밥을 떠먹였다. 그래도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굳이 어르고 타이르지 않았다. 대신 과자를 달라고 하면 과자를 주고, 우유를 달라고 하면 우유를 내줬다. 모두 알겠지만 이렇게 되면 계속해서 밥을 먹지 않고 간식만 찾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가끔 아이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육아관을 고수했다.


그러다 키가 평균보다 작다는 얘기에 친구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밥 먹이기를 시도했다. 밥을 먹이기 위해 아이를 타이르거나 울리지 않아도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친구의 생각대로 동영상을 틀어주면 밥을 잘 먹었다. 다만 그때부터 아이는 식당에 들어가면 휴대폰부터 제 앞에 갖다 놓기 시작했고, 동영상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구는 자신의 육아관을 지키고 있지만 갈수록 어려워 하고 있다. 힘에 부친 어느 날은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고(나는 이 친구가 소리를 지르는 걸 13년 만에 본 것 같다) 한 번은 너무 말을 듣지 않아 엉덩이를 때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자신의 육아 철학을 되뇌며 일관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단, 이는 첫째에게 만 해당되는 사안이다. 둘째는 엄하게 키우고 있으며 둘째의 성향은 첫째와 완전히 다르다). 아직도 그녀에게 식사시간은 전쟁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첫째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건 사치에 불과하다.

815_1486_045.jpg 엄한 엄마 밑에서 커서인지 태평이는 대체로 본인에게 주어진 식사는 깨끗하게 다 먹는다.

최근 두 가족이 모여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논 후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아이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식사가 나오자 태평이는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더니 주어진 식사를 모두 먹었다. 친구의 딸은 놀고 싶은 마음에 엄마 아빠와 실랑이를 하다 결국 휴대폰 동영상을 틀어 주고 나서야 밥을 몇 숟가락 먹었고, 이내 먹기 싫다며 식당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첫째가 식사 자리를 이탈한 동안 둘째는 친구의 훈육 아래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나와 친구의 육아 철학 중 정답은 없다. 지금 두 아이는 성향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부모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한다. 아이를 엄하게 키운 후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는 아이의 행동을 책망하거나, 아이를 자유롭게 키운 후 아이가 막무가내로 행동한다고 화를 내면 안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키운 대로 행동한다(물론 그러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어 100%라곤 말하지 않겠다).


아마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아무리 친구 사이지만 육아관이 다르면 친분을 유지하기 힘든데 어떻게 계속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데, 생각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면 된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친구가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여줘도 나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자신도 보고 싶다고 떼쓰는 태평이에게 "엄마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차라리 이따 노는 시간에 텔레비전으로 봐"라고 얘기해도 친구는 섭섭해 하지 않았다. 서로의 교육관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좋은 점을 배우면 관계 유지는 물론 조금 더 나은 육아를 할 수 있게 된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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