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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Apr 09. 2018

상상이 현실로..스위스 초콜릿공장에 '퐁당' 빠지다

초콜릿 회사 Frey 공장으로 가기 위해선 바젤에서 기차로 30분 떨어진 Aarau 중앙역 앞에서 Buchs AG 행 1번 버스를 타면 된다.

아직은 어둠이 짙게 드리운 오전 여섯 시, 아니 서머타임이 시작하지 않은 지난주였다면 다섯 시였을 여섯 시에 벌떡 일어나 씻으러 간다. 옆에 엄마가 있어야 푹 자는 둘째가 깰까 조마조마하게 준비를 하다가 결국 터져버린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아빠와 언니도 일어난다.


부활절을 앞둔 어느 평일 아침,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온 가족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이유를 붙여보자면... '첫째 율이와 초콜릿 공장'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 가 볼 초콜릿 회사 Frey는 표준 독일어로는 프라이라고 발음하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프레이라고 읽는다. 바젤에서 기차로 30분 가량 달려 도착한 Aargau주의 Aarau 중앙역. 역 앞에서 버스로 갈아 타니 이미 초등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다. 오늘 우리 가족과 같이 견학할 학생들이란 것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초콜릿회사 Frey의 로고와 공장 방문센터 전경

버스가 10분 정도 달렸을까. 회사 로고가 보이며 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을 오르는데 미처 들어서기도 전에 달콤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방문객을 맞아주는 토끼와 계란 부활 장식 뒤로는 판매점이 위치해 있는데 벽면 가득 촘촘히 진열된 색색깔의 판 초콜릿들이 레고아트인 듯, 쳐다보고 있자니 정신이 순간 아득해진다.


오늘의 목표는 부활절용 토끼 초콜릿 꾸미기! 버스에서부터 같이 온 초등학생들과 더불어 실습실로 안내됐다. 탁자에 신청한 사람 수 대로 가운데가 비어 있는 플라스틱 토끼 모형이 있고 그 옆에 작은 짤주머니가 놓여있다. 다크 혹은 밀크로 토끼의 종류를 정하고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있는 짤주머니로 토끼 모형의 몸통을 장식하면 끝.

멀리서 보면 레고처럼 촘촘한 판초콜렛 진열장. 모두 Migros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두 아이의 이름을 딴 다크와 밀크 두 종류의 토끼를 신청했다. 아기인 둘째 것은 남편이 정성 들여 장식하고 나는 큰 아이의 바람대로 하트를 그려 넣고 이름도 크게 새겼다. 이렇게 장식한 토끼 모형을 급속 냉동고에 넣어 굳히는 동안 짤주머니에 남은 장식용 화이트 초콜릿을 쪽쪽 빨며 기다리면 된다. 완성된 반죽을 오븐에 넣고 볼에 묻어있는 반죽을 핥아먹으며 기다리는 딱 그 맛이다. 이윽고 장식이 굳은 토끼 모형을 꺼내 오자 모두들 우르르 달려간다. 이제 드디어 초콜릿 토끼를 만들 차례.

첫째 율이가 조심조심 하트를 짜 넣고 있다.

실습실 구석에서 다크와 밀크 두 종류의 초콜릿이 마치 젖과 꿀인 양 쉼 없이 흘러내린다. 그 줄기에 모형을 대고 속을 채운 후 다시 빼 내는데 공기 배출을 위해 탁탁탁 두드린다. 그렇다, 속이 빈 토끼 초콜릿이다. 처음 이곳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부활용 토끼 초콜릿을 보고 이걸 어떻게 다 먹지 하고 의아했는데 직접 받아보니 속이 비어 있어서 황당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에는 속이 꽉 차 있다면 먹는 방법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두 입만 먹어도 속이 느글느글해지는 게 당연할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싶다.

본격적으로 초콜릿 토끼를 만드는 중. 초콜릿 속을 채운 후 쏟아버리고 공기배출을 위해 탁탁 두드리면 끝.

완성된 초콜릿이 다 굳을 동안 초콜릿 제작 전시장으로 이동하는데 입장객 수에 제한이 있다. 십 분 정도 소요된다는 전시장 입장을 그 두 배는 기다린 것 같지만 모두들 불평 없이 도란도란 즐거운 표정으로 대기한다. 바로 전시장이 시식장이기 때문! 벽면에 초콜릿에 관한 명언들을 독일어, 영어, 불어로 장식해 놓았는데 그중에서 '초콜릿을 즐기며 살아온 삶의 결과가 바로 당신이 보고 있는 내 모습이지요'란 오드리 헵번의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초콜릿 즐기기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나도 훗날 저 말을 빌릴 수 있게 된다면 하고 바랐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입장이다! 안 그래도 첫째 율이는 일분에 두 번씩은 언제 입장하냐고 물어봤다. '엄마 왜 안 들어가? 엄마 문이 왜 안 열려? 엄마 (먼저 들어간) 언니 오빠들은 언제 나와? 엄마 초콜릿은 어디에 있어?'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 들고 입장하는데 첫 내용으로 카카오 농장주들의 인터뷰와 품질 좋은 카카오 선별 방법 등이 나온다. 흥미는 있지만 막무가내인 두 아이를 감당하며 듣기는 힘든 내용이다.

전시장에서 내려다 본 시식레인. 오디오 가이드는 훌륭했지만 저 시식 초콜릿들을 본 후에도 차근차근히 듣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벌써 팩키징에 와 있다. 시식장이 코앞이라는 뜻이다. 아, 이건 관심 있는 내용인데.. 팩키징의 변천사는 정말 알고 싶지만 시식장을 눈앞에 두고 율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결국 모두들 오디오를 얌전히 반납하고 시식장으로 향했다.


스시레인처럼 움직이는 접시 위에 제품별로 다른 초콜릿들이 놓여 있다. 남편과 나는 평소에 먹을 일이 없는 프레스티지 시리즈의 모카, 피스타치오, 넛츠 등의 다크초콜릿을 서로 권하며 음미했다. 한 바퀴 돌아가노라니 초콜릿 퐁듀용 말린 과일 꼬치도 보인다. '생과일보다 말린 과일이 맛이 있겠어' 하며 말린 배 꼬치를 집어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가며 과육을 초콜릿 폭포에 최대한 적셨다.

세미 다크초콜릿 퐁듀. 살구 퐁듀의 새콤한 맛이 싫었던지 엄마를 주고 배 퐁듀만 맛있게 먹었던 율이.

건조돼 달달함이 강조된 배 과육이 그보다 더 단 세미 다크초콜릿과 주거니 받거니 어울리는 한 쌍이 돼 입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오, 생각 이상인데? 이번에는 말린 살구로 시도해 봤다. 달달한 초콜릿의 홍수에 간간이 혀를 자극하는 살구의 신맛이 톡 쏘는 탄산수처럼 알싸하게 상큼하다.


사실 초콜릿 자체는 금방 질렸으나 이 말린 과일 초콜릿 퐁듀는 몇 번을 먹어도 새로운 맛이 나는 듯해서 겨우 자제심을 발휘했다. 율이도 말린 배 꼬치를 들고 자꾸만 도움을 요청한다. 아이가 입에 초콜릿으로 고양이 수염을 그리고 유모차에 앉아있는 둘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가 돼서야 시식을 마치고 장식한 토끼를 찾았다. 아이는 하트가 남발된 채 자기 이름이 쓰여있는 토끼를 보고 뛸 듯이 좋아한다.

두 딸들의 초콜릿. 왼쪽 토끼가 남편이 만든 둘째 것인데 기대 이상으로 장식을 잘했다.

오늘은 모두 생일인 듯 초콜릿을 넘치게 먹었다. 아이는 그래도 만족하지 않은 듯 생일날에 꼭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말린 과일과 초콜릿 퐁듀의 향미가 아직도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날 우리 집 저녁 식탁 메뉴는 라면과 김치. 스위스에 살며 피할 수 없는 '기승전- 라면'인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던 걸 아침에는 왜 생각 못했을까.


◇스위스 초콜릿의 역사

초콜릿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스위스는 알프스산맥이 좁은 국토를 관통해 서유럽 내에서 유독 힘들게 자연을 정복하며 살아야만 했던 역사가 있다. 그런 스위스 사람들은 과연 언제부터 기호식품 초콜릿을 먹어왔던 것일까?


스위스 초콜릿 산업은 1800년대 초, 로잔 근처에 설립된 식품회사 Cailler에서 초콜릿을 생산하면서 시작했다. 지금의 '네슬레가' 되는 이 회사를 필두로 19세기에 걸쳐 Lindt, Frey, Toblerone 등 초콜릿 회사들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졌다. 현재 대부분의 회사들은 인수·합병(M&A)으로 인해 사라졌으나 그 브랜드와 주력 제품은 여전히 생산되면서 스위스 초콜릿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예상 외로 내수 시장이 스위스 초콜릿 시장의 유효 단일시장으로는 제일 규모가 크다. 2016년 기준 840만 스위스 국민의 초콜릿 소비량은 인당 11kg으로, 독일과 세계1, 2위를 다투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도 가장 큰 수입원은 수출이다. 초콜릿 판매량의 65% 이상이 수출되는데 한국에도 잘 알려진 Lindt, Toblerone 등이 대표적인 수출 브랜드다.


하지만 스위스 사람들이 정말로 곁에 두고 먹는 초콜릿은 따로 있다. 최초의 초콜릿 식품회사로 여겨지는 Cailler와 이번에 방문한 Frey의 초콜릿이 스위스 초콜릿 내수시장의 양대산맥을 형성하는 브랜드다. Frey와 Cailler가 역시 스위스의 양대 유통업체인 Migros와 coop 각각의 슈퍼마켓에서 독점적으로 판매되는 덕분이다. Migros는 최근 중국을 주 무대로 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 중으로, 그래서인지 Frey 초콜릿 또한 한국 면세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coop 에서 판매되는 Cailler의 아시아 진출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바젤=김선진 객원기자  reunite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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