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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May 29. 2018

뜬금없는 임산부 엠블럼 이름짓기'실적쌓기 급급한'복지부

"임산부 배려석 때문에 화가 더 늘었다. 임신 후 몸이 좋지 않아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는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한 남성이 한 번 쓱 보더니 그냥 게임만 하더라. 비켜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서서 갔다"(ID car***)


"임신 초기 배가 별로 나오지 않았을 때 임산부 표시 배지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그냥 쓱 쳐다보기만 할 뿐 양보는 안 해주더라"(ID cat***)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임산부 배려석은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 앞에 서 있어도 절대 비켜주지 않는데다 임산부 배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ID lov***)


누구나 한 번쯤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임산부 배려 엠블럼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핑크색 좌석에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표기와 임산부 배려를 뜻하는 '배려의 손과 원'을 결합한 엠블럼이 그려져 있다.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지만 정작 혜택 대상인 임산부 상당수는 '빛 좋은 개살구'라 말한다. 관련 내용의 온라인 댓글만 살펴봐도 임산부 배려 정책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차라리 임산부 배려석이 없는 게 낫다'는 말이 수년째 입방아에 오르는 상황인데 저출산 대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눈에 보이는 실적 쌓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최근에는 복지부 산하 비영리단체인 인구보건복지협회와 함께 뜬금없이 임산부 배려 엠블럼의 이름을 짓는 이벤트를 공모하기도 했다.

임산부 배려 엠블럼 이름 짓기 이벤트(출처=아이사랑보육포털 홈페이지 캡쳐)

지난 10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이 이벤트는 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공식 SNS '임산부배려캠페인'을 통해 알려졌다. 이벤트 참여방법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된 공유 URL에 접속해 엠블럼 이름과 그렇게 지은 이유에 대해 남기면 끝이다. 의견을 남긴 사람 중 10명을 추첨해 1만원 이하의 모바일 상품권을 전달한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벤트를 진행하는 목적과 추첨 확인 일시, 당첨된 이름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 홈페이지를 확인해 봤으나 관련 정보가 검색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아이사랑보육보털'에서 유일하게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벤트가 이미 시작된 지 5일이 지나서야 이벤트 내용이 등록됐으며, 심지어 추가 정보 하나 일절 없이 페이스북에 게재된 내용과 같았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이벤트가 마감된 현재(23일 기준) 유일에 가까운 SNS 이벤트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53명, 공유는 64회에 불과하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관계자는 "현재 이벤트가 마감된 상황으로 아직 당첨자 발표일이 정해지진 않았다"며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만약 괜찮은 이름이 있다면 복지부와 상의해 공식 이름으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임산부인 입장에서 과연 임산부들이 현재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임산부 배려 엠블럼의 새 이름일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대중교통을 편히 이용하기 위해 임산부가 아닌 일부 여성들이 임산부 표지 배지, 가방걸이를 악용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결국 이 이벤트는 임산부 배려 엠블럼의 공식 명칭을 정하기 위함이 아닌 단순 홍보를 위한 이벤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책 홍보 목적으로 시작한 이벤트를 관련 기관들이 더 많은 루트를 통해 홍보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임산부 배려 정책을 두고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역차별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물론 임산부 배려석은 꼭 양보를 해줘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지정석이 아니기 때문에 비워 둬야 할 의무도 없다. 말 그대로 의무가 아닌 배려이며 배려는 곧 개인의 선택으로 행해진다.


정부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핑크색보다 더 화려한 색으로 좌석을 색칠한들, 의미 있는 이름과 예쁜 그림으로 이뤄진 엠블럼을 만든다고 한들 '임산부=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과연 이런 이벤트가 무슨 소용일지 의문이 든다.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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