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노트 Nov 03. 2017

혼자서도 꿋꿋이 걸을 수 있길

애미야. 너무 엄하게 하지마. 아직 어린데

최근 시댁 모임을 하는 날 시어머니가 내게 한 말이다. 물론 시어머니가 이런 얘기를 한데는 이유가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촌 오빠와 잘 놀고 있던 태평이가 갑자기 내게 달려와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들어 봤다. 아이들이 놀면서 늘 생기는, 놀다 보니 감정이 실려 투닥거리다 울음이 터진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날아온 답변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엄마가 오빠한테 내가 일부러 때린 게 아닌데 오빠가 날 세게 차서 속상했다고 말해달라"였다.


나는 태평이를 안으며 얘기했다. "우리 태평이 속상했겠네. 물론 엄마가 얘기하면 조금 더 쉽겠지만 오빠랑 태평이 사이에서 생긴 일은 태평이가 직접 얘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엄마가 늘 네 곁에 있을 수 없으니까. 네 의견과 감정을 얘기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엄마가 옆에 있어 줄테니 네가 한번 말해봐"


몇번의 설득 끝에 태평이는 알겠다며 내 손을 잡고 오빠 옆으로 갔다. "오빠.."라고 개미 새끼만한 목소리로 불렀다. 이미 상황을 정리하고 신나게 놀고 있는 오빠한테 들릴 리가 없었다. 옆에서 조금 더 크게 얘기해보라고 하자 용기를 내 조금 더 큰 소리로 오빠를 불렀다.


오빠가 쳐다보자 태평이는 

내가 일부러 때린 건 아니야. 때린 건 미안해. 그런데..그런데..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오빠가 때려서 나도 속상했어'라는 뒷말을 하지 못한 태평이는 자꾸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나 대신 얘기 좀 해달라는 거다.


(답답함이 저 속에서 끓어 오르지만 꾹꾹 눌러 담고 작은 목소리로) "태평아, 아까 우리 약속했잖아. 태평이 스스로 말하기로. 엄마가 옆에 있어 줄게"


기다리다 못해 오빠는 아이스크림을 사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태평이는 오빠의 뒤통수에 대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오빠가 때려서 나도 속상했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사과는 받지 못했다.


태평이가 울먹이며 내게 달려오고 난 후부터 이렇게 상황이 끝날 때까지 20분 이상이 걸린 듯하다. 자식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육아 스타일의 시어머니가 보기엔 이런 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손주였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시어머니의 말에 '혹시나 내가 심한건가'하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도 물론 태평이가 원하는 대로 조카를 불러 말하는 게 쉽고 마음도 편하다. 자식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얼굴만 봐도 뽀뽀를 부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소중하기 때문에 참는 것도 엄마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가 충분한 능력이 되는데도 너무 많이 의지하려 할 때는 스스로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실상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시작한다. 뱃속에 있을 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셀 수 없이 많아진다. 혼자 뒤집고, 기어 다니고 1년만 지나면 걸어 다니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붙어 모유만 먹던 아이는 돌이 지나면서 숟가락을 집어 스스로 먹으려고 하고 5살이 되면 젓가락질까지 멋지게 해낸다. 그뿐인가 '앙앙' 울어대기만 하던 아이는 '엄마, 아빠'를 하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장을 만들고 곧 자신의 생각을 꽤 논리적으로 표현할 줄도 알게 된다.


독립을 위해 한발씩 걸어나가는 아이는 가끔씩 넘어질 수 있다. 부모는 아이를 일으켜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것은 물론 인생 선배로서 더 쉽게 걸을 수 있는 팁을 귀띔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한번 정도는 같이 걸을 수 있겠지만 그 한번은 두번이 되기 쉽고 두번은 세번이 되기 쉬운 법이다.


나는 태평이가 '잘'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가 됐으면 한다. 아마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나 역시 혹시나 모를 내 부재에도 태평이가 꿋꿋하게 걸어나갈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원하는 건 모두 다 해주고 싶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소중하기 때문에 참는 것도 엄마 마음이다.


PS. 참고로 태평이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다가 들어와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은 오빠에게 말했다. "나도 오빠가 때려서 속상했어. 사과했으면 좋겠어"라고 말이다. 물론 오빠도 쿨하게 사과했고 둘은 다시 즐겁게 놀았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저작권자 © 올리브노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거진의 이전글 오롯이 내 아이만 바라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