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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Nov 13. 2017

당신은 충분히 좋은 아빠다

태평이의 세가지 소원이 담긴 등불.
아빠 일찍 오게 해주세요

최근 태평이와 오랜만에 평일 데이트를 즐기던 중 '소원 등불'을 만들며 아이가 말한 첫 번째 소원이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지만 티 내지 않고 차분하게 다음 소원을 물었다. 두 번째 소원은 "엄마 행복하게 해주세요", 세 번째 소원은 "야야(반려묘 이름)랑 나랑 물고기랑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였다. 태평이와 소원을 담은 등불을 물에 띄우면서 나 역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태평이가 아빠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세요"


내 생각에 남편은 '아이 아빠로서' 100점 만점에 10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갑작스럽게 회사 복직을 결정하면서 남편은 얼떨결에 어린이집 등원 당번이 됐고(남편과 나는 결혼 전 아이를 낳고 일을 하지 않겠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그 후로 매일 같이 아슬아슬하게 출근하고 있다.

남편은 아이가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싶다거나 밥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다고 하면 회사에 지각할 걸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기다렸다가 칫솔질까지 꼭 시킨 뒤에 출근한다.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준비물을 깜빡한 걸 알고 다시 집에 갔다 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가 아픈 날이면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기도 했다.


게다가 적어도 일주일에 두번 이상은 저녁 자리도 하지 않고 집에 들어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는데다 일의 특성상 외부와의 약속이 많아 저녁 자리 혹은 야근을 피해 집에 오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물론 집에 오면 저녁 7시가 훌쩍 넘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은 1시간30분 남짓이지만 그 시간은 그 어떤 친구보다 더 친구처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논다. 주말에도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눈떠서 밤에 잘 때까지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부족함을 느끼나보다. 그래서 다들 육아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험난하다고 하는걸까.

아빠 그림만 봐도 뽀뽀 세례를 퍼붓는 태평이. 아빠가 최고의 친구인만큼 너무 보고 싶어서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다.

아버지 세대에선(적어도 나의 아버지가)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집에 오고 주말에도 회사에 갔다. 반면 (간접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현재 아이를 키우는 30~40대 아빠들이 가족을 위해 할애하는 물리적 시간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 비해 훨씬 길다. (물론 그 시대 아버지들은 회사에 온몸을 바쳐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즉, 하나만 잘해도 인정받았던 세대였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현상이지만 그로 인한 남편들의 고충도 분명 있을 거다.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가정적인 아빠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현재 모시는 상사들은 대부분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다. 가정과 회사, 어느 쪽도 놓쳐선 안되고 놓칠 수도 없는 지금 이 시대의 30~40대 아빠들의 삶도 결코 쉽지 않다.


예컨대 아이와 관련된 일로 휴가를 써야겠다는 남자 선배에게 "아빠가 애 일에 그렇게 나서면 오히려 안좋으니 극성 아빠처럼 그러지 말라"고 하는 상사들을 난 수도 없이 많이 봤다. 그 선배는 겨우 휴가를 쓴 다음날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다음 회식 때 더 열심히 상사의 기분을 맞춰야 했다. 그럴 때마다 결혼한 여성이 이 사회를 사는 불편함과 불합리함도 있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결혼한 남성들이 이 사회를 사는 불편함과 불합리함도 분명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4년째 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딸에게, 그리고 딸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에 서운함을 느꼈다는 남편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도 당신은 충분히 너무나 잘하고 있어.
나도 그랬듯 언젠간 태평이도 알게 될거야.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마.
당신은 최고의 아빠야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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