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도 ADHD 판정받다
첫째와 둘째는 얼굴 빼고는 닮은 곳이 별로 없다.
외출하면 아기 때부터 아빠 곁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에너자이저였다. 얘를 키우면서 살이 죽죽 빠졌다.
신생아 때부터 통잠 자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두 돌 넘어서까지 밤에 잠을 못 자고 새벽이면 악을 쓰고 울기 일쑤였고, 놀이공원에 가면 첫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는데 둘째는 놀이기구 움직이는 소리에 울어대곤 했다. (처음에는 왜 우는지 모르다 나중에 소음 때문에 운다 싶었다)
첫째는 개월수 꽉꽉 채워서 뒤집고 기고 걸었는데 둘째는 신생아 때 이러다 뒤집는 거 아닌가 싶게 팔딱거리더니 금세 뒤집고 배밀이하고 좀 걷는다 싶더니 뛰어다녔다.
학교 입학 후에도, 평균만 하면 만족하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경쟁심이 있어 남에게 지는 걸 무척 싫어했다.
이렇게 닮은 곳이 없다 싶은 애들인데, 닮은 게 있다. 웩슬러 검사 유형.
초등 입학 후 둘째는 같은 반 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이후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 초등 저학년에 풀배터리를 받았었다. 그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놀이치료를 가다 내가 상처받아서 그만두긴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상담사의 자질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첫째가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한 후 몇 주 되지 않아 선생님께 둘째도 진료를 받아볼까 여쭤봤다.
"선생님. 둘째는 첫째와는 달리 학습적인 문제는 없고 학교 생활도 잘하는 편인데 애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초등 저학년 때 풀배터리 검사한 거 보면 웩슬러 유형도 첫째와 비슷해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초등 저학년에 한 풀배터리 검사 결과를 보시던 선생님은 학교 생활이나 성적이 어떠냐 물어보셨고 성적은 좋은 쪽이고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베프 몇 명과 잘 다닌다는 대답이 ADHD 아닐 거 같긴 한데 일단 진료해 보자 하셨다.
진료받고, 약 한 달 후 풀배터리 예약하고 부모 작성 평가지를 다시 받았다(첫째가 풀배터리를 했으면 그때 작성한 거 쓸 수 있었다는데 웩슬러 및 추가 검사만 한 터라 부모 작성 자료가 더 많았다). 둘째도 어린이집 수첩부터 초등, 중등 생활기록부를 꺼내고 아이 평가를 보는데 맙소사. 둘이 얼굴 빼고 닮은 곳 없다는 내 생각을 비웃듯 생활기록부에 반복되어 적힌 말이 있었다. 미술활동 관련, 느리지만 꼼꼼하고 우수한 결과물이라는 표현이 매 학년 계속되었다.
둘째는 원래 미술을 전공하려 할 정도로 (지금은 아니다) 미술활동에 대한 애착과 완벽주의가 있어서 미술활동이 느리다는 말을 봐도 그전까지는 아 그렇구나 했는데 첫째 생활기록부를 본 후 둘째 내용을 같이 보니 느리다는 말이 더 와닿았다.
풀배터리 검사를 마친 아이는 시무룩해서 구두로 진행을 하니 내가 잘못 알아듣고 못한 거도 있어 하며 울먹거렸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후에 결과를 들으러 내원했다.
풀배터리에서 웩슬러는 초등 저학년 때의 패턴과 거의 같았다. 언어이해 평균 상, 지각추론 우수, 작업기억 평균 상, 처리속도 경계선. 지각추론은 우수함에도 특정대상의 누락된 핵심요소를 지각, 변별하는 것은 경계선 수준의 부진함을 보이기에 일상생활에서 부주의하고 비효율적인 양상이 많을 듯하다는 코멘트가 있었다.
정서적 측면에서의 문제가 생각보다 컸는데 능력/성취 추구 및 인정 욕구는 높은데 자신의 약점/실수와 좌절/실패, 타인의 부정적 감정/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자의식이 강하다는 거였다.
부모의 심리검사(사전 작성 검사지에 부모 모두 심리검사를 작성 제출하였다)는 둘 다 큰 문제는 없는 걸로 나타났는데, 남편과 내 결과 내용이 거의 일치해서 (MMPI 그래프 형태까지 일치) 평소 둘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 비슷할 줄은 몰랐네 싶었다.
풀배터리 결과는 첫째와 달리 아이가 ADHD라는 최종 판정은 없었으며 아이의 문제를 우울증(Depressive disorder) 및 주의력 문제(Attention problem) 두 가지로 요약하였다. 그럼 둘째는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가 싶었으나, 의사 선생님은 둘째도 ADHD인 것 같다는 소견을 주셨다.
"얘는 머리가 좋아요. 욕심도 있고요. 그런데 ADHD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만큼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우울한 거고요. 어머니 면담 때 애가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욱해서 그만둔다 한다 하셨는데 ADHD 때문에 충동적인 거예요. 우울증은 ADHD에 따라오는 거니 ADHD를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이렇게 우리 집은, 두 아이 모두 ADHD 진단을 받았다.
아이들의 웩슬러 검사 결과. 하는 행동은 안 닮은 아이들인데 패턴은 비슷하다. 지각추론에서 (빠진곳)이 유독 낮고 처리속도는 경계선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