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는 없던 단어, 비혼주의
알지 못하는 행복보다 보장된 평화를 원하다.
가부장적이고 명령조의 아빠와
마음에 안 들면 아이에게 아빠의 뒷담을 하는 엄마.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부모님의 성격과 행동이다.
물론 매일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니 좋은 말과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엄빠, 아빠에게 전화가 오면 짜증 났던걸 보면 대화다운 대화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은 주에 1번 이상은 꼭 싸웠다. 하지만 그 싸움의 결말은 없다. 엄마는 평소 말이 없는 편이고 마음에 쌓아두는 성격이고, 아빠는 그때그때 필요한 말 짜증 등을 바로바로 뱉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엄마가 참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무난히 넘어가지만 엄마가 술을 마시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내가 미디어를 접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에는 보통 미디어에서 나오는 가정 불화의 원인인 술은 아버지가 마시며 여자와 아이를 패기 마련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엄마는 술에 빠져 살았다. 아이러니하게 술을 마신 엄마가 술을 마시지 않은 아빠에게 맞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나는 지금도 술마신사람과는 언쟁을 하지 않는다. 술 마시고 멀쩡한 대화를 이어갈 사람은 없다는 걸 20여 년간 간접적으로 나마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폭력은 이유불문하고 옳지 않다. 그렇다고 한들 정서적 폭력 또한 나는 동급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엄마나 그런 엄마를 때리는 아빠나 나에게 똑같아 보일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질 나쁜 아빠를 착한 엄마가 참아주는 것처럼 보여 아빠가 대부분 가정불화의 원인처럼 내비쳐지는 것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일정도이다. 하지만 자업자득이기에 딱히 편들고 자시고 할 생각은 없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일을 한다며 나가 돈을 벌어오던 엄마는 회식이 있다며 술을 진탕 먹고는 인사 불성이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당연히 가부장적이던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다시 한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사실 우리 집은 엄마가 벌지 않아도 먹고는 살았다. 하지만 엄마가 벌어온 돈으로 우리의 학원비와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곧 잘 사주었었다. 우리를 위해 돈을 쓰고 싶었던 엄마는 돈을 벌었던 거 같다. 우리를 위해 돈을 벌어오지만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사람. 이것이 끊어 낼 수 없는 애증의 원인일 것이다. 차라리 미워할 증오만 심어주었다면 마음은 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술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던 것 같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술문제가 같이 없어졌다면 참 좋았을 텐데 잔인하게도 술은 더욱 우리 가족의 틈에 스며들며 그렇게 틈은 걷잡을 수 없게 커져만 갔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고 버럭버럭하는 아빠보다 어린 딸에게 부축받으며 집에 돌아오는 인사불성으로 취한 엄마가 더 미워 보이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아빠도 싫은데 이제 엄마까지 싫어지니 집에 있을 이유 따윈 없었던 거 같다. 어떻게든 그 집에서 도망칠 궁리만 하게 됐다.
이때부터 결혼이라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나는 부모와 다르게 행복한 가정을 꾸릴 거야!'
이런 생각을 할 만큼 나는 낙천적이지 못했다. 즐겨보는 애니에서 저런 성격의 주인공들은
"頭がお花畑だ。"(머리가 꽃밭이다.)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정말 저런 성격의 사람을 만나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어온 경험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캐릭터보다 현실적인 조연캐릭터에 더 눈이 가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비혼주의라는 단어가 없었다. 하지만 단어가 없다 해서 그런 생각이나 사실이 없던 것은 아니다. 지금에서야 비혼주의라는 단어 자리 잡으면서 그때 느꼈던 마음이 비혼주의라는 것을 깨닫는다. 단어란 참 중요한 것 같다. 비혼주의라는 단어 하나로 복잡한 이 감정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미혼이 아닌 비혼.
미혼과 비혼의 차이는 의사의 차이 일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미혼.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하지 않은 것은 비혼.
미혼이 조금 더 포괄적 의미이고 그 안에서 비혼과 비혼이 아닌 미혼으로 나뉠 것이다.
마냥 행복할 수만 없었던 아이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꿈꾸지 않게 됐다. 그저 나 하나만 좀 편하게 살았으면. 그저 그뿐이다. 아무런 간섭도 책임도 지지 않게 도움을 받지도 않고 도움을 줘야 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받지 않은 만큼 내가 나중에 짊어져야 할 짐 또한 가벼우리라. 줄곧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19살에 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를 나와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현장실습 3개월간 느꼈다. 서울에서 살다가는 돈을 모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차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돈이란 모든 것에 앞서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그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이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단 몇 년이라도 죽었다 생각하고 집에서 살아야지 하고 그렇게 버틴 세월이 6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