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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알라 Christina Aug 06. 2024

무슨 일 하세요?

첫번째 Job 바이오특수물류전문가

대학원 졸업 후 나의 첫 직장은  홍콩에 본사를 둔 글로벌 물류회사였고 강서구 방화동에 사옥이 있었다.

"어디 사세요?

"하남 살아요. 네? 하남에서 방화까지 출퇴근 한다고요???

아하하하 나는 하남에서 방화동까지 왕복 4시간을 출퇴근하며 9년을 근무했었다.


27개국에 65개 오피스가 있는 물류회사에서 내가 입사했던 그 해에1년에 한번씩 진행되는  정기 미팅을 한국에서 주최하게 되었다.


나의 첫번째 주어졌던 프로젝트는 27개국의 CEO가 참석하는 글로벌 미팅의 전 과정을 홍콩 본사에 있는 매니저와 함께 준비하는 것이었다.


거의 6개월 가량 각 국가의 비자부터 호텔 & 미팅룸예약, 미팅 프로그램 준비, 한국투어 및 이벤트 까지 쉴새 없이 준비했으며

미팅이 있었던 일주일간 매 순간 마음 조이면서도 신입사원의 깨알 발랄함으로 무사히 첫번째 임무를 완수했다.


바이오특수물류전문가?미국에 어학연수 가있는 동안에 그 당시 박사 선배님이시던 우리 사장님께서

종종 이메일로 바이오특수물류에 대한 기사를 보내 주시곤 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어느 순간 스믈스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 사장님은 증말 동기부여의 최강자이시다. 아하하하하하


처음에는 기획 마케팅에서 시작하여 글로벌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 했고 영업팀에서 특송 영업을 하다가 기획 마케팅에 내 보스가 새로 조인한 후엔 바이오 특수물류 관련 비즈니스 리딩을 위하여 수출입 오퍼레이션을 직접 담당하게 되었다.

보스가 퇴사하고 바톤을 이어받아 바이오특수물류팀 팀장으로 내외무 오퍼레이션 팀을 관리하며 글로벌/국내 사업개발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내 직원 중에 유일하게 경영학 대학원을 졸업한 나에게 대학원 박사 선배님이신 대표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덕분에 다양한 부서에서 여러가지 업무를 배울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 책으로 배웠던 다양한 이론과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만들어서 적용해보고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호기심 많은 찐ENFJ에게 다양하게 주어진 해외 출장은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고 문화를 경험하며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득 키워나갈 수 있는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처음 바이오 특수물류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꿈은 한국에서 세팅했었던 바이오 특수물류 비즈니스를 중국 시장으로 확장 시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안전화된 오퍼레이션을 세팅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처음 중국 베이징에 출장 갔던 날 회사 앞에서

일반인들에게 바이오 특수물류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제약사에서 상용화된 의약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임상과 임상시험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시험 샘플들( 동물 혹은 사람의 혈액,혈청,전염성 물질 etc) & 생동물(실험용 쥐, 토끼 ,원숭이 etc) & 임상시험약을 요청되는 온도 범위에 맞게 온도 컨트롤 하면 end to end로 수출입 진행하는 전과정을 핸들링 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바이오 특수물류라고 한다.


전 세계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기에 직원들 교육할 때와 클라이언트 영업 미팅 시에 생명존중 사상의 중요함과 그 중요한 사상을 기준으로 모든 임직원이 업무에 임함을 가장 강조했었고 중요시 여겼다.

온도에 민감하고 위험물에 속해 있는 물질들을 핸들링 하다보니 핸들링 하기 위한 특수한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2년에 한번씩 위험물 취급과정 자격을 갱신하고

직원들 교육을 직접 진행 했었다.


중국은 수출입 규정이 워낙에 까다로운 곳이어서 혈액, 혈청, 임상시험약 등 수출입 허가 받기가 하늘에 별따기와 같아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으나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면서 꿋꿋한 마음과 용기를 다져갔던 거 같다.


장기 계약 따내고 직접 가서 오퍼레이션 세팅한다고 1년 장기 출장 짐을 싸다가 풀었다가 다시 싸다가 1분 대기조처럼 지내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24/7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하며 미국과 일해서 밤새 깨어 있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고  토욜 밤에는 야간 직원이 없어서 하루도 잠들지 못하며 9년을 다녔지만 그래도 내가 내 생애 가장 뜻깊은 순간으로 손꼽는 것은 회사의 성장에 함께하는 나와 동료가 있었고 꿈이 실현되는 현실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복 4시간을 출퇴근 하면서도 그 안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적인 내가 있었기에 지금도 당당하게

일했던 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9년이 되어 갔을 때 쯤에는 중국에 셋업한 바이오물류 비즈니스도 활성화되고 홍콩 본사에서도 바이오물류 산업을 시작한다고 하여 직원들 오퍼레이션 교육을 직접하였으며 새롭게 시작한 온도제어포장재 비즈니스도 활성화 되어 그간의 고생이 푸릇푸릇 새싹으로 피어 오르고 있었다.

 

9년이 되어가던 어느날! 생애 첫 이직을 하게 되는데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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