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못한 이름들에 대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던 도중, 반려동물의 사진을 넣으면 인물사진으로 바꿔주는 GPT 프롬프트롤 보고 장난 삼아 나도 넣어 봤다. 내 눈에는 아직까지 아기 같기만 한 내 고양이인데 GPT에서 출력된 사진은 삼십대 후반쯤이나 되어 보이는 팔자주름 가득한 외국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야차 하고 깨달았다. '아 내 고양이도 10살이구나.' 하고. 사람 나이로는 56살이라고 인터넷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곤 문득 정을 준다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울까 생각했다. 나는 관계를 잘 끊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말 인즉슨 애초에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말도 된다. 내 근처의 대부분은 모두 작은 규모의 십여년이 넘은 오래된 것들이다. 단골 미용실, 단골 카페, 단골 식당, 옷집, 단골 친구들. 익숙함과 안정 속에서 쌓아온 정은 차곡차곡 마음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래서일까 초장의 일회성 만남에서는 요즘 말로 E인 것처럼 신이나 이야기 하다가도, 그 다음 만남에는 희안하게도 어색하게 낯을 가리고 거리를 두곤 한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파악하기가 한참이 되어야 슬그머니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다.그리고 그렇게 내어주는 마음은 생각보다 차곡 차곡 쌓여서 생각보다 꽤나 큰 자리들을 차지 하게 된다.
그래서 어렵다. 시절 인연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 이제는 놓아줘야 하는 사람들과 인연들과의 추억들이 항상 내 손목을 잡아끈다. 내가 조금만 더 잘 하면 되겠지, 혹은 맞춰주면 되겠지 하지만 결국엔 질척이게 된다. 정이란게 그렇다. 내어줄 땐 몰랐던 무게가, 돌아오는 침묵 속에서야 뒤늦게 실려온다. 이별은 결코 거창한 의식이 아니다. 문득 짧아지는 연락과, 생략되는 안부 인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은 틈에 나는 오래 머무르곤 한다.
그렇게 한참을 주춤거리다 안녕 하고 관계를 정리한다. 이름을 불러보고 추억을 곱씹어보고 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자책도 해 보다 끝끝내. 그러다 보니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이름들도 마음 속엔 남아 있다. 일상에는 더 이상 등장하진 않지만 불쑥 떠올라 머릿속을 뒤흔드는 이름들.
그렇게 나는 오래 두고 천천히 익혀내는 관계들을 살아내고 있다.
그 속에서 잊지 못하고, 놓지 못하고, 사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