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주위를 둘러싼 크고 작은 안식처들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기지들은 주로 오래된 무언가 들로 이루어진다. 단골 가게들부터 오래된 인연까지. 호흡이 길고 가늘게 이루어진 이 안식처들은 여태껏 내 주위를 튼튼히 둘러싸고 나의 정체성을 잘 지켜줘 왔었다. 얼마나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지 예를 들어보면 주로 들리는 옷가게 두 군데는 이제 20년 차, 미용실도 10년 차, 연애를 해도 11년을 하다 헤어지곤, 또 다른 이와 9년째 연애 중이다. 식당도, 카페도 한 곳이 정해지면 주야장천 그곳만 들리기 시작한다.
2017년 나를 버티게 했던 이런 안식처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담임 반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가출을 했고, 화장실을 갈 시간 없이 일이 몰아닥쳤다. 남자친구와도 계속해서 부딪히곤 했다. 절친인 정신과 의사인 친구의 조언을 받아 방문한 병원의 상담 선생님께서는 내가 나만의 진정한 ‘셸터(shelter)’를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셨다. 셸터란 어떤 일이 있던지 내 몸과 마음이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느낄 수 있을 물리적, 심리적 장소라고 말하셨다. 유감스럽게도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된 나의 진정한 셸터는 11년을 함께 했었던 전 남자 친구였었던 것이었고 그 잃음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어마어마했는지 나는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셸터’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새로운 셸터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타인을 셸터로 삼고 의지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한번 잃어본 경험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사람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가장 변하기 쉬운 대상이라는 의심 많은 내 성격 상, 마음을 함부로 주기가 힘들었다. 대신 단골 카페들을 셸터로 삼자고 마음먹었다. 의식적으로 들러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카페들은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나니 새로운 장소를 찾는 일에도 겁이 났다.
마지막으로 나는 집 밖에 작업실을 구했다. 그곳을 벽지부터 바닥까지 하나하나 내 취향으로 꾸미고 음악 연습을 하기도 하고 퇴근 후 술을 한잔 하기도 하면서 한동안 그곳을 아지트 쓰고 있는 듯했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닫게 된 건, 내가 셸터로 쓰고 싶은 어떤 장소를 선택한다고 해서 그곳이 쉽게 셸터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리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건 결국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셸터화 시켜보기로 했다. 아지트의 짐들을 정리하고 본가의 서재로 이사를 했다. 어떤 물리적 장소를 셸터로 삼기보다는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어떤 의식들을 셸터로 삼는 것이 제일 이상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들은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면 언제나 평안을 줄 수 있다.
첫번째 의식은 차 마시기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용히 앉아 좋아하는 찻잔에 아끼는 차를 담아 마신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티는 타바론의 버라이어티 팩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나씩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그중 제일 좋아하는 티는 ‘피치 우롱’이다. 달큼하면서도 은은한 향은 고된 하루를 평화로움으로 가득 채워준다.
또 다른 ‘의식’은 바로 일기 쓰기이다. 하루에 느꼈던 일 중 가장 강렬했던 사건에 대해 쓰고, 그 사건에 대한 감정을 쓴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감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적어 내려 간다. 그동안 응어리졌던 마음들은 하나하나 쓰는 글자들에 녹아들고, 바삭한 종이에 적힌 빼곡한 글자들을 응시하다 보면 삐뚤어졌던 마음들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게 된다.
그런 의식들을 주기적으로 행하다 보니 점차 내가 머무르고 있던 방이 아늑하게 느껴지게 되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는 서재, 즉 ‘아지트 방’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이제는 물리적인 장소까지 생겨난 것이다. 여전히 나는 우울하기도 하고 연약하지만, 돌아와 쉴 장소는 하나는 가지고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이 된다.
나처럼 나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멀리서 찾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치 않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무언가이고 그걸 찾을 수 있는 것 또한 결국 나 밖에 없는 것이다.
셸터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차 한잔,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면 충분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