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만 좇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는 노래를 들어오며 자랐다. 항상 별과 눈동자는 반짝여야 아름다웠으며, 바다의 반짝임에는 ‘윤슬’이라 이름 짓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특별히 반짝이는 부분을 찾기 위해 힘쓰곤 한다. 내가 음악을 포기하고 집과 직장만을 오가며 반 칩거 생활을 하던 시기에 지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은아야 다시 시작해 봐. 너는 무대에서 제일 빛나 보였어.”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음악을 포기할 때까지 얼마나 치열히 스스로와 싸웠는지 알지 못했다. 나를 갉아먹고 있던 우울증과의 싸움에서 계속해서 패배하고 있었으며, 밴드 내부의 갈등은 불안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학교 일과의 양립도 저질 체력을 가진 내게는 나름 큰 문젯거리가 됐었다. 무대에 올라서면 모든 것을 잊고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만 무대 뒤에는 모든 것에 지친 채 자동차 핸들을 붙잡고 울던 내가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과연 빛나 보인다고 해서 행복한 것일까?
빛나 보이지 않았던 나의 삶들은 무의미한 것이었나?
위의 질문들에 끝이 보이지 않는 답들을 구하며 방황을 했다. 사람은 일생에 한번 빛나는 순간을 양초 마냥 모아 놓고선 평생을 태워가며 살아간다는 말을 듣고, ‘난 이제 일생의 양초를 다 만들어 써버리고 말았구나’ 라며 침울해했다. 다른 취미들도 시도를 해 봤지만 ‘빛남’을 느낄 수가 없어서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서울 여행을 가서 들린 전시회에서였다. 어두운 전시장의 벽면을 장식한 문장 한 구절이 날 멈추게 했다.
‘빛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너 자신이 되어라.’
그 문장을 읽고 깨달았다. 난 계속해서 누가 봐도 반짝이던 시간과 무대에서의 모습만을 좇아 그리워해 왔고 그때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 외에 쌓아 올려왔던 또 다른 수많은 나만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햇살이 좋은 날 친구와 함께 교정을 걸어 다니며 뿌리던 웃음,
비 오는 날 시험 준비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미끄러졌던 쪼리의 바닥,
첫 발령 동기와 음료수를 사들고 어설프게 들어섰던 교무실의 냄새,
서툰 솜씨로 처음 만들었던 가죽 가방의 촉감,
'저도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요'라던 아이의 말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심장,
학교가 맞지 않다며 통곡을 하던 내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돼' 라던
부모님의 다정한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이 반짝이지 않아도 내게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진정한 빛남이란 무엇일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사실은 한참 전에 이미 식어버린 빛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반짝임 속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진흙 투성이 일지도 모를 그늘 속에서 조용히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비록 미숙하고 반짝이지 않더라도 한 발짝 한 발짝 진실되고 충만하게 삶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내가 만들어 낸 삶이야 말로 가장 아름답게 타오르는 횃불일 테니까 말이다.
<다음 주는 연재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