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잃고, 글을 만나다
내가 처음 밴드에 처음 합류하게 된 것은 2019년도 겨울이었다.
지하 연습실에서 미러볼을 틀어놓고 어색한 마음 반, 떨리는 마음 반으로 멤버들과 첫 합주를 했고
그날 밤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잠을 뒤척였다. 5년 만의 일이었다. 베이스를 다시 잡은 것이. 그리고 난 며칠 후 정식으로 베이스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는 꽤 활발하게 활동하는 밴드가 되었다. 대구, 부산,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공연을 했고 EP를 냈으며 싱글들도 하나씩 발매를 했다. 무대에 서는 시간들은 짜릿했고, 소소하게나마 우리들을 좋아해 주는 팬분들이 생겼다.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떼창을 했고 스포트라이트의 열기와 관객들의 에너지가 섞여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 함께 빛나던 순간들이 있었다. 우린 어설프긴 했지만 그 어설픔이 매력인 밴드라 생각했다. 멤버들끼리도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만 서로 술을 적시며, 가끔씩은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며 풀어나갔고 앞으로도 서로를 잘 맞춰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말로써 풀어나갈 수 없는 균열들이 생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과 틈. 결국 깊게 뻗어가 버린 균열들을 메꾸지 못하고 나는 팀을 나갔고, 팀의 리더 오빠는 그다음 날 해체 글을 올렸다. 2022년의 겨울이었다. 3년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 이후 한동안 나는 팀의 해체가 나의 탓이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금둥이라 이름까지 붙이고 아꼈던 새 베이스는 도저히 다시 잡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집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먼지투성이의 베이스를 보면 마음 한편이 공허해졌다. 몇 번 다른 밴드에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악보만 보며 치고 있자니 악보에 갇힌 듯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고, 복잡한 리프를 만들기에는 초라한 실력임을 깨닫고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결국 베이스를 한평생 치겠다는 마음을 놓아버렸다. 음악을 포기해 버렸다. 먼지투성이의 금둥이는 아끼는 제자에게 무기한으로 대여를 해 줘 버렸다. 능숙한 손길로 행복하게 연주하는 제자의 손에 들어간 금둥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아리면서도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이후, 나는 내 정체성을 상실한 듯 한 끔찍한 느낌에 계속해서 시달렸다.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베이스와는 이제 인연이 없는 삶. 마음 깊은 곳에 닻을 내리고 있던 굵직한 무언가가 사라진 듯 텅 빈 느낌이었다. 모임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취미가 뭐예요?' 혹은 '특기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이전에는 당당하게 '베이스 연주요'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베이스라는 단어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가 비참해졌다. 세상에 특기와 취미가 없는 사람이 꽤나 많을 거라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보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의 방황을 하다가 요즈음 들어서야 글쓰기를 시작했다. 광고로 올라와 있던 일기장 하나를 사보게 된 게 하나의 계기였다. 감사일기를 쓰고, 하루에 글감 하나를 정해 글을 써나가는 일기. 처음에는 너무 오글거리는 것 같아 어색했지만 억지로라도 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1주, 2주를 넘어 써 나가다 보니 공허하고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던 마음이 갑자기 탁 트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어두운 감정의 끝바닥부터 솔직하게 쓰고, 다시 읽어나가다 보면 억눌려 있던 나의 본심들이 드러나 보였다. 외로움, 자책감, 고독, 슬픔 등. 글을 쓰고 나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글 속에 녹아 사라지고 새로운 통찰들이 보인다. 나를 탄탄하게 해주는 것들 말이다. '할머니 소파'라는 글을 쓰던 도중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연 도중의 관객 분과의 교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지만, 완성된 글을 읽고 나니 그곳에서 찾은 것은 바로 내가 음악과 처음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교감 그 이상의 것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느낌도 좋다. 아주 소수인 몇 명이지만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주고 있다. 결국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또 하나는 내가 음악을 하며 뿌듯해하고 즐겼었던 건 연주 그 자체뿐만 아니라 나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즉 누군가와의 연대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음악을 향유하는 방법은 꼭 연주가 아니라 다른 방법들도 많이 있음을 나는 고새 잊고 있었다. 요즈음은 조금 더 (훨씬 더) 마음이 편한 객석에서 홀로 연주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음악을 듣는다. 무대 위 연주자들의 몸짓, 관객들의 박수 소리, 이 모든 것이 합쳐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내가 더 이상 연주 하지 않아도 난 음악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게 음악은 소리가 아니라 이야기가 되었고 앞으로는 음악에 관해 글을 써보기도 할 예정이다. 좋아하는 에세이 중에 김중혁 작가의 '모든 게 노래'라는 작품이 있다. 가끔씩 금둥이가 눈에 밟히기도 할 때면 아래의 한 구절을 되뇌곤 웃음을 지어 본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하지만 음악에 대한 재능은 크게 없이 태어난 사람으로써.
'기타를 산 덕분에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덕분에 소설가가 되었다.
기타를 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고, 내게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음악적 재능을 흠모하게 됐고, 그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아하는 걸 깨닫게 됐고,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됐다.
김중혁 '모든게 노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