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소파

노래로 잇는 마음

by 담연

'나는 더 이상 뒤돌아 보지 않았다.'라고 쓰세요.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독어교육과 수업 중, 독일어 가창 시험 중에 너무 떨려 뒤로 돌아보고 노래를 불렀던 내게 추천해 주신 자소서 첫 문장이었다.


나는 이제 베이스를 메고 무대 중앙에, 커다란 마이크와 함께서 있다. 인데놀을 먹고 떨리는 목소리와 마음을 애써 약기운으로 가리고선 우리 팀의 새 싱글 '할머니 소파'를 부르려고 준비 중이다. 항상 베이스와 코러스만 담당하던 내가 메인보컬로서 처음 부르게 되는 노래이다. 이번에는 뒤돌아 볼 수 없었다. 맘을 질끈 다잡아 먹고, 흐르는 전주에 생각의 흐름을 맡겼다. 무대의 조명은 나를 비추고 관객들의 시선들도 나를 향해 있었다. 축축한 손바닥을 바지에 슥슥 닦아낸다.


https://youtu.be/fYVQftCH1c4?si=BQ3IiXFNHAvPerHt


빛바랜 청바지를 무심히 보다
떠오른 얼굴 하나
반바지만 입고 다님 감기 걸린다
귀에 닿을듯한 목소리로 남았네요


가사를 곱씹으며 이미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바싹 야윈 할머니의 굽어버린 등을 어루만지며 울음을 삼켰던 밤이 생각나 한 소절을 부르고 침을 꼴깍 씹어 넘겼다. 무대를 한번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석은 죽은 듯 조용했지만 그들의 눈만큼은 반짝거렸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가 앉은 소파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가 앉은 소파
빛바랜 소파 위에 앉은 모습이
떠올라 힘들었는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젠 치워진
할머니의 온기로만 남았네요


그다음 가사를 나직이 부르며 항상 낡은 가죽소파에 앉아 나의 퇴근을 기다리는 엄마의 아주 작고 동그란 어깨를 떠올렸다.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욱여넣고 다시금 객석을 살피며 눈빛을 교환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분과 두 눈이 마주쳤고 슬핏 미소를 건넸다.


그러자 그분의 동공이 섬세히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느 순간 눈가에는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울음을 참아보려 하는 듯했지만, 떨리는 어깨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주변 이들은 묵묵히 몸을 움직이며, 혹은 고개를 끄덕이여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고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했다. 나도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끝까지 노래를 이어나갔다.

공연이 끝난 후, 눈물을 보였던 관객 분이 나를 찾아와 말을 꺼내셨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너무 다정해서 눈물이 났어요"라고.

그 말을 듣고 내가 떠올렸던 외할머니와 엄마의 모습들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구나 싶어 뭉클해졌다. 분명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우리는 아주 깊게 이어져 있었다. 그 관객분은 나의 노래로 위로받았고 나 또한 그를 보며 그동안의 그 모든 불안과 힘듦을 보상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대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내밀한 기억과 감정을 나누고 연대하는 곳임을, 또한 이 자리가 또 다른 나 자신을 만나게 된 장소였음을.


다음부터는 노래와 무대는 크게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노래는 내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는 뒤돌아 볼 필요가 없어졌다. 앞을 보고 눈빛을 나누며 서로 연결될 때의 즐거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지만 객석에 서서 또 다른 입장을 가지고 모든 뮤지션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지한다. 그들이 무대에서 나누는 무엇은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음악 속에 살고 있다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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