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끝, 고독의 시작

난로 앞에서 배운 것

by 담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인가요?’ 하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라고 답해왔다. 그놈의 MBTI 검사를 하면 극한의 I성향인 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약속을 잡아 나가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모임을 좋아하고, 술을 먹느라 새벽 4시 5시에 귀가하곤 했던 적이 있었다. 항상 주위에는 사람들이 복작복작을 넘어서 회오리치듯이 있었고 나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지인인 J언니는 이런 상황을 두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사람을 가려서 만나기도 해야 해.’ 라면서. 그래서인지 난 외로움을 탈 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울리던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이 생긴 순간부터는 밖에 나와서 어울리기가 힘들어졌다. 다른 친구들 또한 직장을 갖게 됐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바쁘게 울리던 카톡의 메시지 창이 광고창과 쓸데없는 오픈 채팅으로 채워지고, 나는 의미 없이 알림을 없애기에 바빴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점차 조금씩 느슨해져 갔고 나는 그렇게 좁아져 버린 인간관계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가끔씩은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근거 없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먼저 연락을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종종 ‘어, 이상한데 이 느낌은?’이라는 상황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홀로 있다는 느낌과,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심적으로 잇닿아 있고 싶고, 의지하고 싶다는 새로운 감정이 나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공원 한가운데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어버린 느낌? 강렬한 외로움, 이라는 이름의 감정이었다. 그제야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의지를 해오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결국 내가, 내 스스로 일어나야만 한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고통이었다면, 고독은 기회였다. 내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기에 스스로를 만나기 위한 작은 혼자만의 의식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산책하기, 아삭아삭한 사과를 꼭 아침마다 하나씩 베어 먹기,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일기를 써서 부정적인 감정은 날려 보내기, 깨끗이 샤워를 하고 아지트방에서 티타임을 가지기 등. 그중 제일 도움이 된 건 단연코 글쓰기였다. 지금처럼 나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뒤집어 꺼내서 솔직히 써놓고, 거기에서 얻을 수 있을 나의 용기를 찾아보는 일. 잠시 곁을 스쳐갔던 이 중에 하루종일 앉아서 생각만 할 수도 있다고 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요즈음엔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고독의 시간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졌었을까 문득 궁금해 지기도 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충만할 수 있었다.’ 타인의 관심과 케어가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도 충분히 나를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타인을 통해서 느꼈던 따스함을 이제는 나와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아지트 방에서 작은 고양이와 함께 따뜻한 난로를 켜고 고독을 씹는다. 어딘가엔 나처럼 혼자만의 순간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순간 우리는 홀로 있지만, 고독함으로 연결된 채 서로의 온기가 스며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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