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을 했던 터라 예약석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단순한 ‘예약석’ 명패가 아니었다. ‘박은아님’이라는 이름표가 손글씨로 쓰여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작은 종이카드 하나에 정중히 대접받은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아 마음이 움직였던 기억이 있었다.
타인에게 배려받고 존중받는 일은 종종 있을지 모르지만, 난 내 자신을 돌봄에 있어서 꽤나 박한 편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는 우울증의 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실수들을 자꾸 곱씹으면서 ‘박은아 바보’라며 자책하는 일이 잦았다. 아주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왜 그때 생기부에 오타를 그렇게 많이 냈을까?’
‘왜 그때 차를 몰아서 사고를 냈을까?’
‘엄마한테 화를 좀 덜 내야할껀데.’
그리고 가장 복잡다단한 생각인 ‘난 학교가 맞지 않는게 분명해.’
그런 생각들을 꺼낼 때마다 ‘박은아 바보’를 덧붙였다. 그리곤 머리를 쿵쿵 쥐어박았다.
하지만 타인에게는, 특히 학생들에게는 난 한없이 따스한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웠고 절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참 잘했어’
‘~는 정말 열심히 했네’
‘~가 그런 마음이 충분히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라고 하곤 어깨를 두드리기도, 손을 맞잡아주기도, 가끔씩은 가슴팍에 꼭 안아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행복해했고 나도 그럴 때만큼은 삶이 충만하다고 느꼈다.
어느 차가 몹시 밀리던 퇴근길이었다. 학교에서 생긴 해프닝 하나에 지쳐 있었고,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퀭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꽉 막힌 도로처럼 가슴 또한 답답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또다시 시작된 몹쓸 죄책감이 나를 덮쳐왔다. ‘박은아 바보!’ 하고 머리를 습관처럼 두드리려던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머리와 배를 동시에 두드리며 문지르던 한 예능 프로그램이 떠올랐고, ‘머리를 두드리는 대신 쓰다듬어 보자’라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혼자 머리를 살짝 살짝 쓰다듬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 부드러운 손길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터져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 이후, 누군가가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 적이 그렇게나 없었던 것이었다. 그 황망했던 짧은 순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는 줄곧 해왔던 내 따스한 말들이 필요한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리곤 그제서야 감춰왔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나는 한 손으론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론 머리를 쓰다듬으며 통곡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은아야 잘했어,
넌 최선을 다 했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어.
그러니 더 이상 자책하지마”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흘렀다. 내 마음속의 무언가도 그렇게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울먹이고 나니 먹구름이 개듯 마음 한켠이 가지런해졌다. 운전대를 다시 단단히 붙잡고 집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커다란 쌍커풀에 묻혀 평소 잘 보이지 않던 속쌍거풀이 살풋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새싹이 머리를 내밀 듯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 나의 자존감을 보는 듯 해 웃음이 났다. 아직은 미약하고 불안하지만 이제는 쓰담쓰담이라는 작은 위로의 방법을 배웠으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향한 첫 위로의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