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칸의 이력서

열등감 극복하기

by 담연

대학 시절 수업 중, 교수님께선 다음 시간에 예비 이력서를 작성해 보겠다고 미리 공고를 하셨다. 별 것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 난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력서에 들어갈 내용이 없었다. 동아리도 하나 들지 않았었고, 영어와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유학이니 교환학생이니 그 흔한 한달짜리 프로그램 하나도 갔다 오지 않았었다. 압박감을 느끼던 나는 빈칸뿐인 이력서가 두려워 결국 그 다음 수업날 결석을 해버렸다. 돌아보면 사소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항상 나를 갉아먹던 열등감을 처음 마주하게 됐다. “영어관데 유학 어디로 갔다왔어?” 라는 질문 말이다.


유학에 관한 골을 얘기하자면 끝이 깊다. 우선 그 당시 우리 집은 나를 유학 보내줄 만큼의 형편이 되지 않았다. 동생은 고3이었고, 서울의 SKY 대학에 들어갈 만한 성적이 나와서 아주 비싼 논술학원을 다녀야만 했다. 그 몇백이 모자라 부모님은 지인들에게 돈을 융통하셔야만 했다. 그리고 장학생이었기에 학교에서 보내주는 무료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정말로 당황스럽게도 부모님께선 당시 내가 교제하고 있던 파란 눈의 독일 남자를 해외에서 만날까 봐 두려워하시며 공짜일지언정 나를 절대로 해외로 보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렇게 나의 유학에 관한 꿈은 그냥 꺾여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동생은 덴마크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떠났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부러워졌다. 특히 사소하지만, 친구들의 액센트가 그렇게나 탐이 났다. 알래스카 액센트, 시카고 액센트, 뉴욕 액센트. 느릿느릿한 교수님의 텍사스 액센트까지도. 꼭 외국에서 살거나 배워와야지만 묻어오는 그 특유의 울림들인 것 마냥 말이다.


나에게는 없는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원서를 읽고, 일기를 영어로 쓰고, 노래도, 영화도, 드라마도 영어로 된 것들을 보고 읽으며 영미권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하려고 노력을 했다. 영어를 자주 접하다 보면 영어권에서 살다온 것처럼 두뇌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며 종일 영어를 생활에 두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그 중에도 유독 독하게 발음 공부를 했다. 내가 제일 갖고 싶었던 것. 책 한권을 하루에 몇 번씩 따라 읽으면서 원어민 흉내를 냈다. 그러자 발음에서는 자신감이 붙었다. 지나가다 알게 된 한 외국인 지인은 "은아 영어에선 그 한국인 특유의 억양이 거의 없어" 라며 칭찬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특히, 유학의 빈자리를 느낄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내 수업에 대해 “선생님 수업은 어려운 것도 쉽게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라는 피드백들을 줬고, 나는 그제서야 오래 묵혀뒀던 열등감 타래 하나가 풀리는 듯 한 느낌이었다. 나만의 노력이라는 가위로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 왜 그때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라도 허락해 주지 않았냐고 대성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는 알 수 있다. 분명 유학을 갔다 왔더라도 그 어떤 무엇이 나를 또한 열등감에 빠지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이 쓰고 단 경험들이 모두 차곡 차곡 모여 ‘나’ 라는 사람을 만들어 가는 과정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의 이력서의 빈칸은 부끄러움이었지만 이제는 내게 설렘이다. 빈칸이 있었기에 나는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채워나갈 나만의 희망이다.


삶의 빈칸 또한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하나씩 채워나가기만 하면 되는 나만의 공간일 뿐인 것이다. 이 빈칸들은 내가 꿈꾸는 모습으로 서서히 채워져 가며, 나만의 특별한 색깔을 입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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