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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Jan 09. 2024

잘하는 게 없으면 봉사를 못하나요?

모태신앙이지만 아무것도 못해요

노래 못하는 성가대원


나는 노래를 못한다. 음치까지는 아니지만 결코 좋은 목소리도 아니다. 타고난 성대도 아니거니와 진성은 나조차도 못 들어줄 정도이고 가성은 마이크를 갖다 대도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이다. 그런 내가 성가대라니, 사람들이 비웃었다.


'집사님 목소리가 안 들려요'

'좀 크게 불러보세요'

'하나도 안 들려요!'


목이 터져라 불러도 하나도 안 들린단다.

나는 가수도 아니고 성악도 배운 적이 없는데 못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렇지만 찬양하는 시간만큼은 예배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고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성가대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집사님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돼요"

나는 노래를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생각이 없었다. 내 기도제목은 따로 있었으니까.

왜 자꾸 나한테 기도하라고 하는 건지 내 기도제목을 왜 남들이 정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성가대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누구나 자격 있는 거 아닌가요?

하나님은 노래 못하는 사람의 찬양은 안 받아주시는 분인가요??'


언젠가 한번 장애를 가진 분들의 찬양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귀로 듣기에는 음정과, 박자 하나도 맞지 않았고 가사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은 소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찬양을 듣고 엉엉 울었다.

태어나서 들어본 찬양 중에 가장 아름다운 찬양이었기 때문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서 보여주기 위한 찬양을 하는 사람들과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용기 내어 온 맘 다해 올려드리는 찬양 중에 어느 것이 하늘에 닿을까.


찬양팀으로 봉사했을 때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성가대와는 다르게 중간중간에 앞에 나가서 성도들의 찬양을 돕는 봉사였는데 내가 앞에서 찬양할 때마다 성도들은 한 마디씩 했다.


'손을 이렇게 좀 해보세요'

'표정을 이렇게 해야죠'

'마이크를 이렇게 들어야죠'


나의 부자연스러운 제스처가 못마땅했던 성도들의 잔소리를 제외하면 가장 은혜받은 봉사였다.  반강제적으로 일주일에 3번 이상, 주일에는 집에 오면 밤 9시가 될 정도로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힘든 봉사였지만 평소 모르는 ccm이 없다고 자부했을 정도로 찬양을 좋아했던 나는 매시간마다 눈물을 쏟으며 기도할 수 있었고 신앙이 성장하는 기쁨을 느꼈다.

어쩌면 나의 어정쩡한 모습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많이 자책했고 나부터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잡음은 사라져 갔고 수년간 찬양팀으로 섬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성가대와 찬양대를 수년간 해오던 나를 바뀐 지휘자가 노래를 못한다는 이유로 라버렸고 나는 결국 쫓겨났다.




말못하는 주일학교 선생님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긴장하면 더욱 말문이 막히고 앞에 두세 명만 있어도 목소리가 떨린다.

중고등부 교사 시절 학교 앞으로 전도를 나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데 어느 집사님이 나에게 호통을 쳤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말을 못 해!"


순간 나는 얼어버렸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말을 못 해 왜 그렇게 말을 못 해 말을 못해 못해 못해 못해'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말로 가득 차서 아무 말도 못 나오게 내입을 막아버렸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정말 말 못 하는 선생님이 돼버린 것 만 같았다.


아이들을 만나면 한 명 한 명 한 주간 어떻게 살았는지 대화하고 그날 말씀주제로 설명하고 기도해 주고 예배에 못 나온 아이들은 더 신경 쓰고 부모님들과도 정기적으로 통화하고 나는 나름대로 정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했는데 말 못 하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자격이 없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격이라고 생각했다.

하고자 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봉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잘하니 못하니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 자격을 부여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유로 봉사를 망설이고 있을까.

노래를 잘해야 성가대를 할 수 있고 말을 잘해야 교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노래를 잘하게 해달라고 말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렇게 될까?

그런 기도를 들어주실까?


모세가 스스로 말재주가 없고 혀가 둔하여 자격이 없다고 머뭇거렸을 때 호통을 치신 이유와 그에게 말재주를 주시지 않고 말 잘하는 아론을 대신 세우신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분명 아닐 것이다. 모세에게는 말재주보다 더 중요한 뜨거운 열정과 감격이 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나아가야 한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 지어진 그대로. 부족한 모습 그대로.

포장하거나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 나를 드려야 한다.

치유하고 고치시어 사용하시는 것은 그분의 뜻이며 우리는 함부로 요구해서는 안된다.

나는 말하고 싶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재능이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누구보다 천재라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도덕적 행위에 흡족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죄인임을 고백하며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기도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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