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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Jan 19. 2024

자살드론 #6

연재소설


"미연 씨, 민수선배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죠?"

"전 회식 때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미연은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대답했다. 현우 또한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도로표지판이 마치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민수가 사고로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진선배한테는 연락했어요?"

"아뇨. 못했어요. 정신이 없어서. 대표님이 하시지 않았을까요?"

"사고에 대해 더 아는 건 없어요?"

"없.... 어요..... 임기자 님 죽으면 어떡해요? 애들도 아직 어린데 사모님은 어떡해요 "

미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현우는 계속 되뇌었다.

'선배 제발 정신만 차리고 있어요 제발......'


"자살.... 은 아니겠죠?" 미연이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워낙 많으니까요. 제 지인들 중에도 몇 달 사이 2명이나 죽었어요. 다 자살이래요. 어떻게 그래요? 세상이 미친 거 같아요"

넋이 나간 로 창밖을 바라보는 미연이야말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착한 병원은 미연의 말을 방증이라도 하듯 아수라장이었다. TV나 인터넷기사로만 접하던 사건사고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서둘러 도착한 수술실 앞에는 경찰 두 명과 고대표가 사고경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현우와 미연은 목례를 하고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멀쩡한 사람이 도대체 왜 거기서 뛰어내려요? 조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 고대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들은 현장에서 주변 CCTV를 확보했고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며 고대표를 진정시켰다.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수술이 잘 끝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저 어제 민수선배님 만났습니다"

화두와 같은 현우의 말에 미연과, 고대표, 경찰 두 명이 놀란 눈으로 일제히 그를 향했다.

"어제? 이상한 점은 없었나"

고대표가 물었다.


현우가 민수를 만난 시각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민수는 빈 사무실인 줄 알았는지 문을 열자마자 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현우를 발견하고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퇴근 안 했어요?"

", 자료 좀 볼 게 있어서요. 선배님은요?"

"나도 기사 탈고가 덜 끝나서......"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번화가 골목에 위치한 사무실 근처에는 맛집이 많았지만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인기 있는 우동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뜨끈한 우동이 최고죠. 안 그렇습니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얼큰한 우동을 한 젓가락 입에 넣고 현우가 말했다.

"우리 회사에는 왜 오게 됐어요?"


현우는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왜라는 질문은 좀 더 심오한 대답을 바라는 질문일까, 아니면 공감을 바라는 질문일까.

"갈 데가 없어서요"

길게 생각하기도 전에 입술에서 진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나랑 똑같네"

"실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었습니다. 5년 동안"

"힘들었겠네. 나도 고시 아닌 고시공부 해봐서 어느 정도 알아요.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 자식 키워보면 그 마음 알죠"

"저 외할아버지 손에 컸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아르바이트하고 8시간 공부했습니다"


연신 젓가락질을 하던 민수의 손이 멈추었다.

", 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데 왜 그만뒀어요?"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아서요"

또다시 진심이 튀어나왔다. 현우는 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저는 초긍정 성격이라서요. 공부할 때도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되면 되고 아님 말고 그러다가 선배님 칼럼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내 칼럼을 봤어요?"


"선배님 칼럼 정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1년 전인가.. 모녀 동반자살 사건에 대해 쓰신 거요"

"아 그거...... 그 사건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전 국민이.. 그 사건이랑 여배우 자살 그 이후로 자살도 많이 늘었고. 그거 알아요? 그런 사건이 생기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돼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또 일어났구나.. 반면에 오늘 쓸 거 생겼구나...... 다른 사건사고들은 기자로서 열심히 취재하고 인터뷰하면 되는데 그런 비극은 정말......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걸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쓰다가 현타가 오기도 하고...... 그런데 그래도 써야 하니까.. 어떻게 그 삶을 함부로 얘기하지 않고 또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국민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어렵죠. 그러고 보면 차라리 감정 없는 AI가 나을 것 같기도 해. 하하. 현우 씨는 아직 젊으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인생을 들여다봐요. 그게 쌓여서 나중엔 내 것이 될 거예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의 가라앉은 음성에서 그동안 겪었을 고독과 철학이 느껴졌다.

민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어떤 거 쓰고 있어요?" 

". 최근 사건들 보면서 이전 자살사건 기사들을 스크랩하면서 조사 중입니다"

"우진이가 또 이상한 거 시킨 건 아니고?"

"하하 아닙니다. 그런데 자꾸 막힙니다. 제 역량이 부족해서......"

"궁금한 거 있음 언제든지 전화해요. 혹시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면 고대표님께 부탁해 봐요. 도움이 될 거예요"


민수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없었는지 찾아내야 했다.

얼굴빛이 어둡고 좀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민수의 온화한 미소가 현우의 머릿속에서 떠나 않았다.

현우는 자신이 뭔가 빠뜨린 것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동집에서 나온 후 민수는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며 하늘을 쳐다봤었다. 별한 점 보이지 않는 까만 서울의 밤하늘에 볼게 뭐가 있었을까.

"선배님? 선배님!"

두어 번 정도 불렀을까 잠시 불안한 표정을 짓던 민수는 서둘러 "나 먼저 집에 가야겠어요. 내일 봐요"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시야에서 사라졌다.

민수 또한 사무실에 들렀지만 하늘 같은 선배님과의 대화가 설렘으로 다가온 것일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저한테 '내일 봐요'라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여보!!"

현우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병원복도를 울리는 은영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수술실 문으로 돌진하는걸 경찰들이 붙잡아세워 진정시켰다.

미연이 그 모습을 보고 또다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뭔지 현우는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의 광경이 기시감처럼 다가왔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친가와는 어릴 때 인연을 끊었다고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그 무엇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집안에는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 기억 속에서 지우다시피 했다. 지우려고 노력하니 점점 아버지의 존재는 원래 없었던 존재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독극물을 마셨고 한 달을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다 결국 영원히 눈을 감았다. 현우는 13살이었다. 외조부는 모자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손자를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을 알고도 달려가지 못했던 마음은 아직도 고통으로 남아있었다.

도로로 뛰어들었던 여자를 기억했다. 겁에 질려있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생각나자 눈을 질끈 감았다. 잊은 줄 알았는데 트라우마가 된 건가.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느껴지자 놀라 눈을 다.


"용기자님 괜찮아요??"

미연이었다. 간호사가 민수의 소지품을 주고 갔다며 전해준 물건에는 자동차키, 지갑, 손수건, 휴대폰이 있었다.

은영을 바라보니 경찰의 설명을 듣고 있었고 고대표는 여기저기 걸려오는 전화로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민수의 휴대폰은 깨진 흔적이 많았지만 이상 없이 작동했다.


그때 갑자기 민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현우는 깜짝 놀랐지만 휴대폰이 뜬 이름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한유라박사]

잠시 망설이던 현우가 전화를 받아 또박또박 말했다.


"임민수기자님 휴대폰입니다"

"용현우?"

"...... 유라?"

""

"내가 아는 그 한유라?!"

휴대폰 너머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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