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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Jan 23. 2024

자살드론 #7

연재소설


"피험자 100명을 대상으로 100대의 드론이 현재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피험자의 체내 호르몬 밸런스를 파악해서 매일 전송되고 있고요. 하루 두 번 모니터링으로 외형 및 감정변화를 관찰 중입니다. 이상발견 시 즉시 알림이 울리도록 설계되 있으며 아직까지 특별한 이상 없었습니다"

브리핑을 마친 유라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윤기 흐르는 검은 단발머리 아니 떡진 단발머리에 깊은 갈색 눈동자가 충혈되어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듯 보였지만 미모는 여전히 빛났다. 보고서를 살펴보던 변교수가 말했다.


"좋아! 유효성검증은 언제쯤 마무리될 것 같나?"

"이번 임상 끝나면 3단계 돌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드론시스템 덕분에 개발속도가 당겨져서 5년 보고 있습니다"

"후보물질 개발에만 3년 걸렸는데 5년을 또 기다리라고? 됐고, 1년 안에 끝내"

특유의 능청스러운 얼굴에 쭉 찢어진 눈으로 유라를 훑어보면 최이사가 말했다.


"안됩니다. 과도하게 단축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3단계 테스트 유형이 3000건이에요. 어떻게 1년 안에 끝냅니까?"

'이 영감탱이가 돈에 미쳐서 드디어 돌았나?'

오늘도 성질을 돋우는 최이사를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까 잘하면 되잖아. 부작용 없는 약을 개발하라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 과학계가 우릴 주시하고 있어"

최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변교수가 한술 더 떠서 거들었다.

"맞습니다. 중국 상해연구소팀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쪽 유전자은행규모가 우리와 비교도 안됩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던 거 아시잖아요. 우리가 지금 왜 드론까지 동원했는데요. 큰일 납니다!! 최소 3년은 시간 주세요"

"그래! 말 잘했네. 그 일 때문에 1년을 날렸잖아. 개발해보고 싶다고 해서 투자금 받아 지원해 주고 부설연구소까지 내주고 연구원들 붙여주고 수석도 달아줬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하냐고. 내년까지 끝내. 식약처 승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수고!"

얄미운 변교수의 말을 끝으로 이사장실은 나온 유라의 얼굴이 한껏 굳어져있었다. 천재소리를 들으며 이른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연구소에서 인턴쉽을 마친 후 첫 직장이었다. 10년 가까이 피나도록 노력했다. 나이 어린 여자라서, 남들보다 똑똑해서,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더 열심히 꿈을 위해 버텼다. 그 결과 능력을 인정받았고 지금의 자리에 왔다. 꿈에 그리던 신약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라가 3년의 시간을 갈아 넣어 개발한 물질은 획기적이었다. 첫 시작은 유전자 치료제였지만 후보물질 발굴하는 과정에서 신체노화를 되돌리는 가능성의 세포를 발견했고 성공만 한다면 세계최초 기적의 신약이 될 발견이었다. 이례적으로 개발부터 승인까지 유라에게 맡겨졌다. 변교수의 이름으로 이끄는 팀이었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유라였다.

"거액을 투자했다는 사람인지 기업인지 내 알바 아니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망하면 지들이 책임질 거야? 돈만 쳐 밝히는 능글맞은 또라이 같은 인간들"

사무실 책상에 서류를 던지 유라의 입에서 오늘도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현과 동우가 피식하고 웃었다.

"우리 한유라 수석님 오늘도 빡치셨네"

함께 꿈을 그리며 학부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이현과 입사 후 만난 2년 선배 동우.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연구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라는 특유의 매력 있는 미소를 던지며 자리에 앉았다.


"9시네! 모니터링 시작하자"

유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각자의 모니터에는 각각의 피험자들의 호르몬 밸런스와 감정변화를 체크하는 데이터가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전에 다들 이것 좀 봐야겠는데"

동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이현과 유라의 시선이 향했다.


"뭔데 그래요?"

동우가 켜준 화면에는 여배우의 자살소식을 전하는 뉴스화면과 함께 실시간 댓글의 현황판이 보였다.

화면  여배우가 활짝 웃고 있는 얼굴 위로 드론이 찍혀있었다.

유라의 눈이 점점 커졌다.

"우리 드론이 왜 여기에......"

"우리 거 아닌 거 같은데? 이 사람은 우리 피험자도 아니잖아요"

이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근데 똑같이 생겼잖아"

동우가 드론을 캡처한 사진을 확대하며 말했다.

"자살하는 사람은 원래 많았잖아요. 우연이겠지"

이현이 유라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자자 모니터링 시작합시다"

니터로 들어갈 듯 뚫어지게 쳐다보던 유라가 두 사람 사이에서 갑자기 벌일어나더니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그 시각 유라가 찾아간 곳은 드론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 사무실이었다.

"이건 저희 제품이 아닙니다. 외형은 비슷하지만 비행방식도 저희랑 다르고요. 아마도 민간드론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피험자의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칩으로 연결된 있데요. 이거는 제가 보기에 원격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요즘 워낙 드론불법제조가 많아서 아마도 짓궂은 사생팬 짓이 아닐까요?"

"우리 드론이 아닌 거 확실한 거죠?"

"네 확실합니다"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유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악몽 같은 을 떠올렸다.

1년 전 동물실험을 마치고 시작한 임상 첫 단계에서 88번째 피험자에게 약물을 투여한 지 한달. 정기투여에서 피험자의 상태를 관찰하던 유라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동공이...... 왜 이렇지??'

마치 약물과다 부작용처럼 확장되어 있는 동공과 불안해 보이는 피험자의 모습에 놀란 유라가 실험노트를 보는 사이 피험자가 유라의 가운주머니에 있던 펜을 꺼내 들어 말릴 틈도 없이 스스로 목을 찔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고 피험자가 실려나가는 동안 유라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사고 충격으로 연구 중단을 선언하고 칩거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매일, 24시간 실험노트를 보며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수십 개 수백 개의 논문을 읽고 또 읽었다. 자해한 피험자에게서는 어떠한 징후도 특이점도 없었다. 우울증을 앓은 전력이 있었지만 중요한 특이점이라 판단하지 않았고 임상시험기간에는 어떠한 약도 복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목을 찌른 여자의 눈이 자꾸만 떠올라서 잠들 수가 없었다. 밤이면 와들와들 떨면서 구석으로 들어가 무릎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악몽 같은 시간이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다시 켜본 휴대폰에는 신경 쓰이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송영훈 기잡니다 한 번만 만나주십시오]

[송영훈 기잡니다 사고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송영훈 기잡니다 집 앞에 있습니다 ]

[내일 또 오겠습니다.]


유라는 간단한 문자메시지로 답장을 보냈다.

[사고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집 앞으로 찾아온 영훈을 만난 유라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저는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는데요"

"취재하러 온 거 아닙니다. 연구 이대로 중단하실 겁니까. 실험실에서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관련방송이나 기사는 나간 적 없으니 안심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송사에서 취재해 간 걸로 아는데요"

"아마도 삭제된 것 같습니다. 제가 그 피험자 가족들을 만나보려고 했지만 이미 이사를 갔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분이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정보를 알게 됐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시험기간에 복용했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이제 제 손에서 떠난 연구예요. 그만둘 거예요. 아니 그만둬야 해요"

"지금 그만두면 그 연구 다른 누군가가 계속할 겁니다. 이왕 할 거면 다른 사람보다는 한박사님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영훈의 말에 유라는 할 말이 없었다.

연구자료를 영구 삭제하지 않는 한 최이사와 변교수가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유라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영훈이 주고 간 명함을 손에 곡 쥔 유라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연구실을 다시 찾은 유라는 칩거 중 열심히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실험에 착수했다.

'노화를 억제하는 세포와 항우울제의 연관성을 밝혀내야 해'

최이사는 유라를 환영하며 별도의 연구실을 마련해 주었고 뭐든지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임상시험 재개날짜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피험자들 모집도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드론 시스템은 피험자의 호르몬 및 감정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유라의 아이디어였다.

피험자들도 처음엔 감시당하는 것 같다며 꺼려했지만 부작용 예방과 시험기간단축을 위한 시스템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동의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신체의 활력징후나 혈액 조직의 약물농도뿐만 아니라 체내지방분해 및 몸의 유해한 독소를 배출해 주는 효과로 만족도 또한 매우 높았다.

그러나 여배우 자살사건 이후로 드론이 이슈가 되면서 1년 전 사건이 오버랩되어 다시 유라를 괴롭혔다.


"신경 쓰지 마세요. 연예인이 자살하면 원래 한동안 좀 그렇잖아요.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현과 동우가 위로했지만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영훈이 준 명함을 기억해 냈고 전화를 걸었다.

영훈에게 드론과 관련된 사건들에 관해 묻고 싶었으나 망설이던 그때 영훈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연구는 잘 되시는지요? 저는 요즘 드론과 관련된 사건에 집중 취재 중입니다."

"저 실은 저희 연구에 드론이 활용되고 있어요. 사건 취재하시면서 특별한 것이 있으면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부탁드립니다"

일련의 자살사건들과 드론이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죄책감이 덜어질 것 같았다.

영훈은 흔쾌히 그러겠다며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유라는 수십 개의 화면중 하나에서 이상징후를 나타내는 표시등이 뜨자 화면을 확대했다.

확대한 화면에는 피험자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위치는 강남 중심사거리. 호르몬 이상 변화를 나타내는 표시등이었다.

'뭐야. 왜 이래. 고장인가'

유라는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모니터링을 시작한 이후 피험자의 첫 돌발행동이었다.


이현과 동우가 함께 모니터를 보다가 어느새 달려와 전화기를 들어 119를 눌렀다.

"119죠. 지금 강남 사거리......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걸었다가 끊은 이현이 반색하며 다급히 말했다.

"저 사람이 금 피험자를 구한 거죠? 그런 거죠??"

"수석님?"

멍한 표정의 유라는 이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했다.

화면 속에 현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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