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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Jan 30. 2024

자살드론 #8

연재소설


유라에게 학창 시절의 특별한 기억은 많지 않았다. 공부를 습관처럼 해왔기에 남들보다 잘했고 밝은 성격에 인기도 많아서 리더의 자리는 늘 유라의 것이었다. 모범생들의 모범생으로 어디에서나 주목받았고 칭찬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유라에게 현우는 신비로웠다. 6학년 때 전학을 온 현우는 말수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대화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눈에 띄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소문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현우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유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것과 할아버지와 둘이 산다는 것.

어릴 때 부자였는데 쫄딱 망해서 부모님이 이혼하고 버리고 갔다더라, 부모님이 동반자살 했는데 쟤만 살았다더라 하는 소문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같은 중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다른 곳으로 하게 되었는데 전쟁처럼 공부만 하던 유라의 가슴 한편에 언제부터 그 아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유라의 단골 편의점에서 저녁알바를 하던 현우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인사조차 없었지만 서로를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부터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던 것은 유라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학원이 끝나고 자정 무렵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던 유라가 여느 때와 같이 편의점에 들렀던 날, 늘 먹 커피가 보이지 않았다.

"커피 없어?"

"응"

"진짜 없다고?"

"품절이야"

실망한 표정의 유라가 뒤돌아서려는데 현우가 말했다.

"1+1이야"


현우는 구석냉장고 한편에서 커피를 꺼내 유라에게 건넸다. 현우의 손에는 유라가 찾던 커피가 두 개 들려있었다.

커피를 받아 든 유라가 현우에게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고마워 이건 너 마셔"

"또라이가 아니었네" 현우가 내던지듯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누가 나보고 또라이래?

"응. 애들이 너보고 똑똑한 또라이이랬거든"

"뭐? 넌 사이코패스였거든?"

"내가 사패라고?"

"중학교 때 기억 안 나? 학교에서 죽은 고양이 나왔을 때 애들이 다들 니가 한짓이랬어. 그 후로 니 별명이 사패였어"


현우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출입문에 걸린 방울이 짤랑거리며 점주 김 씨가 들어왔다.

"고생했어 어서 퇴근해. 오늘은 웬일로 친구가 왔네"

"넵!"

친구라는 말에 황당해하는 유라 옆에서 현우가 평소와는 다른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터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옆으로 두 사람이 컵커피를 들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유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이쪽으로 가도 돼? 이쪽으로 가면 한강이야"

"나 원래 한강 건너서 집으로 가는데"

"어 그럼 우리 집이랑 방향이 같네? 왜 여태 몰랐지"

"너만 몰랐겠지 항상 너네 부모님이 데리러 오시잖아"

"넌 어떻게 알았어? 우리 부모님 오시는 거?"

유라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던 현우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고양이 죽이는 사패랑 같은 방향인 게 싫은 거야?"

"앗 그거 진짜 너였어? 진짜로?"


현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유라를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던 현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유라는 현우를 바라보다가 그의 눈이 향한 곳을 보고 함께 걸음을 멈췄다.

4-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리난간을 잡고 서서 금방이라도 강물로 빨려 들어갈 듯 내려다보고 었다.

"잠시만"

현우가 속삭이듯 말하고는 천천히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유라는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얼음처럼 서서 현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다가간 현우가 몇 마디 주고받더니 남자와 함께 걸어갔고 유라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 끝에 다다랐을 때쯤 남자가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현우가 유라를 향해 돌아다.

"저 아저씨랑 무슨 얘기한 거야?"

"......비밀"

유라의 눈을 바라보며 무심한 듯 내뱉고는 알수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십수 년이 지났지만 매일같이 걸었던 그 길이 익숙한 향기로 유라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지금도 그 자리에 19살의 두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얘기가 잘 통한다는 생각은 한적 없었지만 말없이 함께 있어도 편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나서도 우울할 때면 그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그때도 그게 좋아서 부모님께 거짓말하면서 일부러 매일 같은 시간 편의점에 가서 1+1 커피를 샀다. 주고받았던 대화, 바람소리, 자동차소리, 유독 까맣던 강물이 어제일처럼 생각났다. 그때 그 다리에 서있던 아저씨랑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과 차도로 뛰어든 여자에겐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

유라가 타 지역 국립대로 진학을 하고 현우 또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참 신기한 것은 인생에는 수많은 갈림길에서도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결국 이어져있다는 것이다.


'15년 만인가'

가슴을 가득 채우는 알 수 없는 감정은 반가움일까, 고마움일까, 아니면 걱정일까.

모니터를 몇 번이나 되돌려보며 유라가 되뇌었다.

'하나도 안 변했네. 용현우다'

미소 지은 유라의 입술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38세 미혼여성. 좌측 유방암 수술 후 항암제와 방사선 병행치료 중 임상시험 제의를 받고 참여. 돌발행동으로 인한 사고발생 우려로 시험 중단. 우울증 병력 있으나 투약 이후 특이사항 없음]


피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검사와 정신분석 검사를 진행했지만 어떠한 문제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았었다는 피험자는 세로토닌 수치가 조금 감소되어 있을 뿐 항암치료로 인해 저하되어 있었던 면역세포와 호르몬기능은 상승되어 있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 한가운데였어요. 어떤 남자분이 저 붙잡고 뭐라고 한 거 같은데 그것도 생각이 안 나요. 저 왜 그런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 선생님?

"일단 투약 중단하고 당분간 입원하면서 지켜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피험자를 안심시킨 유라는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1단계에서 자해를 시도했던 피험자를 떠올렸다.

'그때 그 사람과 좀 더 세부적인 상담과 검사를 진행했어야 했어'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나 더 큰 사고로 이어질지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임상시험 중단해야 됩니다"

"중단은 곧 실패야. 그거 모르나??"

유라를 향해 최이사가 말했다.

"그래도 중단해야 됩니다"

"근거는?"

"1단계에서 자해했던 피험자와 같은 병력이 있어요. 아직 기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정밀한 세포검사를 진행한 뒤 원인을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돌연변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조군과 좀 더 비교분석을 한 후에....."


유라 말을 자른 것은 최이사였다.

"중단은 안돼. 중단할 이유도 없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겨우 1%잖아. 3단계도 무난하게 성공이라고 "

"1%라니요. 대한민국 우울증 환자가 20%가 넘어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치명적인 부작용도 아니고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원래 우울증세가 있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충동으로 보고할 테니까 나머지는 계속 진행해"


변교수가 한술 더 뜨며 말하기 시작했다.

"30% 피험자들은 임상효과가 정말 우수합니다. 2단계에서 벌써 우리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요. 암세포 성장전이억제, 항바이러스 효과뿐 아니라 기대했던 대로 노화를 발생시키는 세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억제 수준이 아니라 사멸이에요. 3단계에서는 건강한 4~50대 성인층 피험자들로 준비하겠습니다. 유효성만 입증되면 과학계에 혁명을 가져올 겁니다 하하하"

말을 마친 변교수가 웃으며 최이사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과 의원님께서도 관심을 많이 보이시고 매우 흡족해하십니다"


소곤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 사무실로 돌아온 유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됐어요?" 이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씨알도 안 먹히지 뭐. 일단 나는 개인적으로 좀 더 조사해 볼 테니까 수고 좀 해줘요"

"지금 벌써 난리예요. 20대의 몸으로 되돌리는 기적의 신약이라고 하면서 은밀하게 떠도는 소문이 있는데"

"그런 약이 어디 있어. 그게 가능하겠어?"

"그게 우리 회사라는 소문이에요. 오늘 주가가 35프로나 올랐어요"


세상이 아무리 미쳐간다고 해도 이대로 가다가 죽지 않는 약이라도 나올 판이었다. 유라는 젊어지는 약을 만들고자 한 게 아니었다.

'원치 않는 병으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도와주고자 한 연구였는데......'

따뜻한 커피를 한잔 뽑아 들고 사무실을 나와 차가운 공기와 함께 마셨다. 그때  영훈으로부터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

"신약 부작용에 관한 자료파일이 필요합니다."

"기밀이라 공유해 드릴 수 없어요. 이유라도 말씀해 주시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혹시 드론과 관련이 있나요??"

"파일을 공유해 주시면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상시험에 쓰이는 드론 말고 또 다른 드론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영훈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한참 후였다. 영훈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민수는 영훈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의문의 말을 했다.

"드론이 저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영훈이 말한 그 드론이요. 저를 죽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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