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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May 31. 2018

보통 직장인의 2주 휴가

재작년 초, 그 이듬해인 작년의 추석 연휴가 향후 수십년간 또 오지 않을 기회임을 알게 되었다. 4일의 휴가를 내면 2주를 통으로 쉴 수 있는, 신이 한국 직장인들에게 허락한 골든위크!  


벼르고 벼른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황금연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곧 네팔을 가기로 결정했고, 비행기 티켓을 딱 1년전에 구입했다.(비행기표가 딱 1년전에 풀린다!!) 주변에, 특히 회사 동료들과 상사에게 미리 황금휴가를 찜했음을 알렸다. 여행 준비하는 과정도 틈틈이 티를 냈다. 무거운 중등산화를 길들여야 한다며 신고 출근하는 식이었다. 부모님께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길고 긴 준비 기간을 보냈고, 마침내 네팔 여행을 다녀왔다.


2주 여행은 꿀맛이었다.

황금휴가라 한국인이 (무지하게!) 많았고 바가지를 (자주!) 썼지만, 안나푸르나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2주였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내년 추석 2주 일정으로 티켓팅을 했고, 다시 회사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있다.

추석 즈음에 전 늘 없을 겁니다. 행여 그 즈음 큰일을 만들어 절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휴가를 열심히 기다리다가 문득, 14일의 휴가를 보내고 다시 351일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조금 짠해졌다. 인생의 96%가 기다림인 셈이다. 하기야, 일주일만 따져도, 모든 직장인이 금요일만 기다리며 산다. 7일중 5일, 약 71% 정도니 좀 나은가.


기다림의 시간은 설레임이 있기에 참을만 하다.

진짜 짠한 건 고작 2주 휴가에 온갖 눈치보는 보통 직장인 내 모습이다.

이런 은혜로운 휴가를 하사(?)해주신 회사와 상사에게 예전 회사에선 꿈도 못 꾸었을 2주 휴가라면서 설레발을 떨어대고, 내가 없는 동안 동료들에게 민폐가 될까 이것 저것 챙기느라 야근을 해댔다.

추석 연휴를 붙여 고작 4-6일 휴가 쓰는데, 심지어 내 휴가 내가 쓰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니, 나?


지난 5월초 연휴 내내, 인스타 타임라인은 여행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 빛나는 사진 뒤에 지난한 일상과 스트레스, 누군가에 대한 눈치와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떠난 휴가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웃는 걸까.

애잔한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휴가 간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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