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여행추억팔이 번외편.
2012년의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갔던 비행길이었다. 800km를 오직 내 다리로 40일을 걷는 순례자의 여정을 겁도 없이 덜컥 하기로 하고,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순례자가 되러 가는 길이라서 그랬을까, 준비 하나 없이 떠난 길에 액땜을 하라고 그런 것일까, 비행길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남미여행을 하고는 아르헨티나에서 게으름병에 걸려 몇개월을 주저앉아 있었다. 이걸 해야겠다 하는 생각만 있었을뿐, 무교에 트레킹 경험도 없었고, 짐은 1년간 한없이 늘어나 있었고, 남미에서 비행편도 비싸고... 당시 모든 상황적 요인은 가면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 여행의 대 전제는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한다' 였기에- 비행편을 결제해버리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브라질의 저가항공사였는데, 브라질을 경유해서 남미와 유럽을 잇는 비행편 중 가장 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하여 브라질 상파울루를 거쳐 살바도르에 내렸다가, 다시 날아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는 전무후무 4회 경유 비행편. 지금 생각엔 미친 짓이었지만, 40시간 버스를 밥먹듯이 탔기 때문에 이것 쯤이야 싶었다. 또한, 당시 장기 여행 중이었던 나는 무조건 싼 것이 취향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상파울루까지 가는 길은 별 이상이 없었다. 같은 대륙인데 그 지긋지긋한 버스를 타지 않고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드디어 남미를 떠나다니. 옆에 한 일본 남자애가 자기도 유럽에 간다며 남미 여행이 어땠는지 말을 나누기도 했다.
문제는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살바도르까지는 브라질 국내선을 이용해야 하며,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파울루 국제공항은 지금껏 내가 가본 온갖 공항 중에서도 가장 체계가 없었다. 국제선과 국내선의 수화물 연계가 잘 안되는 듯했다. 1층 직원은 짐을 찾아 다시 부쳐야 한다고 했고 2층 직원은 짐을 목적지에서 찾으라고 했다. 헐? 뭐라고요? 혹시 몰라 짐을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
과연 우리 짐이 우리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을까를 걱정하며 브라질 입국 절차를 거치는 중에, 철창 너머로 아까 이야기를 나눴던 일본 남자애가 멀뚱멀뚱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아...일본인은 브라질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브라질 입국에 비자가 필요없는 한국여권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헉. 남의 불행을 다행스럽게 여기다니, 지금이라도 반성합니다.
살바도르행 브라질 국내선은 그렇게 일본남자애를 상파울루에 남겨두고 출발했다.(출발 직전까지 일본 이름을 부르며 빨리 타라고 하는 방송이 나왔다...지못미….)
무사히 비행기에 탔다고 해서 편한 비행이 될 수는 없었다. 내 짐이 나와 같이 가고 있는건가? 살바도르에 내리자 마자 수화물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없었고, 아무도 속시원히 답해주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찾아보라는 무책임한 직원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잠을 자는둥 마는둥, 유럽을 가는 설레임따윈 느낄 순간은 없었다. 내 이런 거지같은 비행기 타시는 타나봐라. 짐은 받고 욕을 하자. 마음은 흔들대는 비행기처럼 불안했다. 지금이야 필요한 물건만 사서 다니지뭐~했겠지만, 당시 그 짐은 내 전재산이었다.
드디어 유럽,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그래도 선진국이니 좀 다르겠지, 했다. 환승시간이 짧아 동동거리며 수화물을 기다리는데-
나온 건 내 배낭 뿐.
분명 같이 체크인했던 언니의 가방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비행기 환승 15분 전 우리는 내 배낭만 들고 환승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기내 수화물 검사를 받다가 액체물 제한에 걸려 애써 만든 소고기고추장과 샴푸 등을 털려야 했고,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후, 걱정이 무색하게 동행인 언니의 가방이 무사히 나왔다.
결국 사람 둘, 짐 둘 무사히 도착했다. 문제가 없는 상황인게 너무 이상했다. 내 정신은 저어기 브라질 살바도르 쯤에 두고 온 것 같은 느낌.
대체 왜 내 배낭은 독일에서 튀어나왔던 걸까? 그 일본 남자애는 어떻게 되었으며, 그애의 짐은 어디에서 돌고 있을까?
우리는 바로 다음날 까미노를 시작하는 곳인 생장드피에드포트로 떠나는 떼제베 기차를 탔어야 했으나, 며칠 미루었다. 그 기이한 비행의 후유증을 치유해야 까미노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에서 동네빵집 크루아상을 몇 개 먹고서는 곧 제정신을 차리긴 했다.
이 최악의 사건을 지금도 낄낄대며 추억팔이하고 있는 걸 보면, 참 여행이란 알 수 없는 것 같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그 거지같은 비행편 티켓이 남아있다! (위 사진) 글씨가 다 바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