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의 일주일
벚꽃이 피기 전에 아직 겨울의 한기가 그대로 남아있을 무렵 나는 일을 그만둔 상태였고 동경으로 무작정 향했었다.
동경에서 만난 사람. 나는 동경에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간 게 아니다.
지독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진가였다. 선생님이기도 하면서.
그를 만난 건 2023년 7월 1일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 내 심장박동을 140 BPM까지 올린 사람.
만나기 전에는 동경으로 떠날 거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9월 1일에 동경으로 간다고 통보를 받았다. 정말 동경을 가는 그를 나는 동경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처럼 나를 대하곤 했는데 그 앞에서는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왜 나를 어린애 취급하냐고 불평도 해보았었다.
나한테 사진 현상 하는 법을 알려주고 홀연히 동경으로 떠나버린 사람을 쫓아 동경에 3번이나 갔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지만.
29살에 나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인연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면 그 총량을 다 써버렸다고 느낄 만큼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이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벚꽃조차 져버리고 여름의 기운이 감도는 시간이 도래했다. 그는 홀연히 미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서울에 남아있다. 남아있는 걸까 남겨진 걸까. 나 스스로 선택해서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 갇힌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쩌다가 갇혀버린 걸까. 나 스스로 금문교 다리를 부신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을 보여주게 되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내 솔직함에 더욱 좋아게 될까?
나는 이미지로 세상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는 단 며칠 만에 내 세상을 완벽하게 뒤집어 놓은 기분이었는데 손바닥 안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상생하는 기분이었다. 나랑 정반대의 사람. MBTI부터 숫자에 밝은 거부터 시작해서 그가 말한 대로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달랐다.
나는 그림을 보면 내 나쁜 기운들이 다 사라져 나가는 기분이라고 그래서 미술관에 가고 그림을 보는데 그는 그저 그림은 색깔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느꼈는데 그가 말한 대로 그는 많은 데이트를 한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에 이끌려서 그가 내 남자친구를 하겠다고 했는지는 정확히는 영원히 나는 알 수 없을 거다. 그가 나의 솔직함이 좋다고 말했지만 내가 정말 100% 솔직했을까? 내 자신에게 되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생일 선물처럼 생일날 남자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지만. 단지 그가 거절을 잘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라면 나는 돌이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과 데이트한다고 생각하면 많이 슬플 거 같다.
그와 처음 만난 건 신오쿠보에서 였는데 단지 같이 저녁 먹을 사람이 필요했고 데이트를 나가고 싶었다. 내 친구는 내가 좋아하지만 2/7일 날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의 마음을 몰랐고 나는 도쿄에서 혼자였기에 뭔가 만날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제 알고 보니 나는 만나자는 그의 제안에 두 번이나 거절을 하고 날짜도 바꾸고 내 마음대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만나줬다.
첫인상은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키가 크고 마르고 갈색 눈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가 늦어서 게임센터에서 3000엔을 소모하고 있었는데 답장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날 찾아냈다.
마르고 이솝 휠 향이 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고. 신오쿠보였지만 나는 한국음식을 이미 먹었다며 거절했는데 신주쿠 어디론가 데려가서 예약을 7시 30분에 하고 우리는 또 게임센터에 갔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가 그가 500엔을 줬는데 한 번에 성공해서 랏소베어가 3개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를 가지고 카페에 가서 얘기를 나누고 오코노미야끼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얘기했는데 내가 먼저 "난 싫어하는 사람이랑은 술 안 마셔"라고 했다 그리고 생일날 만날래 하니까 “그래”해서 생일날 만났다.
내가 도쿄 타워에 가고 싶다고 하니 같이 가줬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 얘기하고 그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다 지켜볼 수 있다면 얼마나 징그럽지 않을 거 같냐고 하고 암튼 그런 대화들을 나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생일날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늦었다. "어디야?" "가고 있어 이슈가 좀 있었어."라고 그는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면도를 하다가 피가 나서 피가 멈추질 않아서 늦은 거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일본식 전통 찻집에서 연어 덮밥 세트와 딸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쓰고 네이비색 붐버재킷과 깔끔한 줄무늬 셔츠와 카키빛 카고 바지에 부츠를 신고 왔는데 나는 그게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적어도 보기 좋았고 멋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른다. 내가 글을 적어도 영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그도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로망 대로 우리는 내 생일을 맞아 도쿄 타워에 갔고 그가 티켓값을 내줘서 고마웠었다. 나는 전남자친구와 도쿄타워에 와봤던 적이 있지만 적어도 생일날 좋아하는 사람과 와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도쿄타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했는데 한국 전쟁 때 쓰인 탱크를 재사용해 재건한 거라고 했다. 나는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정보여서 생소했고 이런저런 정보를 알고 있는 그가 너무 신기했었다. 나는 밥을 먹었기에 그는 간단하게 규동을 먹었고 우리는 시부야에 있는 내 호텔에 가서 생일 케이크를 먹었다. 그때까지도 같이 잠을 안 잤었다.
네가 먼저 남자친구가 되어줄래 했던 건지 그가 먼저 여자친구가 되어 줄래 했던 건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얘기한 거지만 그가 말하길
"그날은 너 생일이었어. 하지만 그날은 내가 기회를 잡고 너랑 함께 해야 한단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특별했어. 난 2년 넘게 혼자 여행을 다녔어. 정말 지속적인 관계를 찾기가 힘들었어."
나는 그에게 말하길 "나는 다른 한국인들과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어. 네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