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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보다도 못한...

"호모 지랄스(Homo Zirals)"의 탄생

by 조통달
전곡 선사박물관에 있는 '선사시대의 매장'표지판

"매장풍습의 시작은 인류 진화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에 해당한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큰 차이중의 하나는 매장풍습의 유무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공동생산, 소비를 하였기 때문에 생산력이 저조했으며 동물들의 위협으로 안정적이지 못했고 매장행위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는 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식량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서 잉여식량이 발생하였다. 안정된 생활은 자아의식의 확대로 이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사후에까지 계속 지속시키고 싶은 바람이 매장행위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에 있는 표지판이다.


호모 에렉투스에게 죽음은 사라짐에 불과했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행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생존이 곧 전부였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에게 죽음은 다른 의미였다. 안정된 식량과 공동체의 삶이 가능해지자, 비로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할 여유가 생겼다. 매장은 죽은 사람을 땅 속에 묻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바람의 의식이었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행위의 시작이 종교의 기원이었을 것이다. 매장은 단순히 시신을 묻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죽음 이후에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믿음을 생성했다. 죽음의 공포와 막막함을 견디기 위해, 인간은 억지로라도 사후세계를 인정하려 했다. 사랑하는 이를 완전히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죽음 이후에 대한 공포감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는 바로 그 본성 위에 세워지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위로하며,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을 삶의 힘으로 바꾸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생존의 불안 속에 죽음을 흘려보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죽음을 붙잡아 종교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돈과 정치, 권력에 매몰된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그건 종교業이다. 죽음의 공포와 막막함을 달래고,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며, 삶의 의미를 확장하려 했던 그 순수한 기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종교의 시작은 무덤 속에 사랑을 묻고 믿음을 심었던 인간의 떨리는 마음에 있었다. 神을 컨텐츠로 돈과 권력을 모으고 현실의 질서 위에 군림하는 믿음은 종교가 아니다.


삶과 투쟁에 치여 죽음의 의미조차 깨닫지 못했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보다도 못한 이들이 있다. 돈과 정치, 권력에 매몰되어 종교의 순수성을 잃은 인간들, 나는 그들을 호모 지랄스(Homo Zirals)라 부른다.

전곡 선사박물관 전시장에 있는 인류의 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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