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가르치는 '계급', 정부부터 최저임금 꼼수를 버려라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주말에 불쑥 물었습니다.
"아빠, 정규직 선생님과 기간제 선생님이 뭐야? 뭐가 차이나?"
깜짝 놀라 물어보니, 담임선생님이 방과 후 교실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곧 계약이 만료되시니, 새로 오실 선생님께 업무 인수인계를 잘해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그 말에 같은 선생님이라도 뭔가 다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평생 학교를 지키고 누군가는 계약 만료를 걱정하며 쉽게 떠나야 한다는 것을. 또한 누군가는 '정규직'으로 불리며 안정적으로 대접받고, 누군가는 '기간제'라는 꼬리표를 달고 불안정하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니 이런 것을 가르쳐야 할까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정규직은 계속 일할 수 있고, 기간제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거야"라고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과연 평등 교육인가 싶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같다는 평등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은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과 '보이지 않는 신분'을 가장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을 받아야 할 평등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은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학교는 평등을 가르치지만, 정작 학교 안은 고용 형태에 따라 칼같이 나뉘어 있습니다. 교장, 교감, 정규직 교사는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이 있습니다. 기간제 교사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걱정합니다. 학교 행정실안에는 정규직 공무원과 공무직 무기계약직이 함께 근무를 합니다. 급식 조리사는 방학 때마다 무급 휴직을 감수합니다. 방과 후 보조교사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으며 몇 개월 계약으로 버팁니다. 방과 후 보조교사는 매년 지원서를 내고 매년 인터뷰를 하면서 새로운 학교를 찾아다녀야 합니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누군가는 안정적이고 누군가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걸 매일 봅니다. 2월이면 "선생님 내년에도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선생님이 있고, 그냥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걸. 어떤 선생님은 아파도 쉬지 못하고, 어떤 선생님은 병가를 쓸 수 있다는 걸.
이건 교과서로 가르치는 평등이 아닙니다. 학교생활 자체에서 인지하는 불평등입니다. 고용 형태가 다르면 같은 일을 해도 대우가 다르다는 것, 안정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것을 배워갑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문제는 이런 구조를 만든 주체가 바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입니다. 학교 비정규직의 인건비는 대부분 교육청 예산에서 나옵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책정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말은 핵심을 찔렀습니다.
"왜 정부는 사람을 쓰면 꼭 최저임금만 주냐? 최저임금은 '이 이하는 주면 안 된다'는 최저선이지, 그것만 주라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은 법이 정한 금지선입니다. '여기 아래로는 내려가면 안 된다'는 마지노선. 그런데 공공기관들은 이 금지선을 마치 권장 기준처럼, 아니 사실상 상한선처럼 사용합니다. 예산을 짤 때 "비정규직 인건비는 최저임금으로"라고 적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민간 기업이라면 이해라도 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니까요. 하지만 정부는 다릅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모범적인 고용주가 되어야 할 조직입니다. 그런 정부가 왜 노동자를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만 보는 걸까요?
학교 방과 후 보조교사는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학습을 돕고, 때로는 담임교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냅니다. 그런데 시급 1만 원 남짓을 받습니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20시간 계약이면 한 달에 80만 원 정도입니다. 이게 정부가 생각하는 '교육 노동'의 가치입니까?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똑같은 일을 시키는데 고용 안정성이 있는 쪽이 임금이 더 많고, 잠깐 쓰는 사람의 임금이 더 적다. 전 반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건 단순히 임금을 올려주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고용이 불안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 많은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방안을 줘야 한다는 것. 이게 상식입니다.
정규직은 정년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아프면 병가를 쓸 수 있고, 출산하면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연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내년 계약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프면 계약이 종료될까 봐 참고, 임신하면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숨기고, 연금은 꿈도 못 꿉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한쪽은 안정적이고 한쪽은 불안하다면, 불안한 쪽에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안정적인 사람이 더 많이 받고, 불안한 사람이 더 적게 받습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지자체가 저지르는 더 황당한 건 퇴직금 회피 수법 하나를 소개합니다. ‘노무법인 함께’의 이민규 노무사가 저에게 알려준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지자체는 계약직을 1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계약합니다. 1월 1일은 빨간날이라는 이유로. 그러면 364일이 돼서 1년 미만입니다. 퇴직금을 안 줘도 됩니다."
처음 듣고 귀를 의심했습니다. 1월 1일은 공휴일이니까 1월 2일부터 출근시킨다고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계약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계약 기간이 364일입니다. 하루가 모자랍니다.
근로기준법은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365일 이상이어야 퇴직금 지급 의무가 생깁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의도적으로 하루를 빼서 이 의무를 회피합니다. 법을 어기는 게 아닙니다. 법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겁니다.
이게 전국 지자체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민규 노무사는 "하루 차이로 퇴직금을 못 받는 계약직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정부는 잘 살펴서 이런 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대통령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정부도 2년 지나면 정규직 된다고 1년 11개월 만에 다 해고한다. 계약도 아예 1년 11개월만 하고, 퇴직금 안 주겠다고 11개월씩 계약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2년 이상 같은 업무를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1년 11개월에 계약을 끊습니다. 퇴직금 지급 의무는 1년 이상부터 생깁니다. 그래서 11개월 단위로 계약합니다. 법은 지킵니다. 법의 취지는 완벽하게 무시합니다.
법을 만드는 정부가, 법을 집행하는 지자체가, 법을 지켜야 할 공공기관이, 법망을 피하는 교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들은 당연히 이를 따라 합니다.
"공공기관도 저러는데 우리가 뭐…"
정부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기업에게 노동 존중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공공기관이 꼼수를 쓰면서 민간에게 준법을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게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사들은 방학 때마다 무급 휴직을 합니다. 정확히는 '계약 중단'입니다. 학생들이 없으니 급식을 만들 필요가 없고, 급식을 만들지 않으니 일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여름방학 한 달, 겨울방학 한 달. 1년에 두 달을 무급으로 쉽니다. 아니, 쉬는 게 아니라 소득이 없습니다. 그 두 달 동안 조리사들은 다른 일을 구하거나, 저축해 둔 돈으로 버티거나, 빚을 냅니다. 그러다 개학하면 다시 출근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학교는 방학 때도 있습니다. 행정실도 돌아가고, 교사들도 출근하고, 시설 관리도 계속됩니다. 그런데 유독 급식 조리사만 '필요 없으니 나가 있으라'는 식입니다.
문제는 이런 고용 관행이 정부 지침에 따라 이뤄진다는 겁니다. 교육청 예산 편성 기준에 "급식 조리사는 급식 운영 기간만 인건비 지급"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산을 아끼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비용으로 보는 겁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면 조리사들이 다시 나옵니다. 아이들은 "아주머니 방학 잘 보냈어요?"라고 인사합니다. 아주머니들은 웃으며 "그래, 잘 쉬었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그 두 달 동안 수입이 없었다는 걸, 다른 일을 하며 버텼다는 걸, 아이들은 모릅니다.
선생님들은 방학 때도 월급을 받지만, 급식실 아주머니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같은 학교에서 일해도 누군가는 안정적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
학교는 작은 사회입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먼저 배웁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고용 안정성에 따른 위계를, 계약 기간의 잔인함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다녀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좋은 직장'이 뭡니까. 돈을 많이 주는 직장? 아닙니다. 안정적인 직장입니다. 정규직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학교에서 매일 보니까요.
교육의 목표가 뭡니까. 평등한 시민을 기르는 것 아닙니까. 서로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우받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학교는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로.
정부가 선도해야 합니다. 공공 부문부터 하루 빼기 계약을 없애고, 최저임금을 상한선처럼 쓰는 관행을 끊고, 불안정 고용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민간도 따라옵니다.
학교 비정규직부터 바꿉시다. 방과 후 보조교사에게 최저임금이 아니라 적정 임금을 줍시다. 급식 조리사에게 방학 때도 월급을 줍시다. 기간제 교사에게 고용 불안에 대한 프리미엄을 줍시다. 계약서에서 하루를 빼는 꼼수를 없앱시다.
비용이 늘어난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용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 정부가 모범을 보이면 사회 전체가 바뀝니다. 공공기관이 노동을 존중하면 민간도 따라옵니다.
변화는 지금, 공공 부문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매일 다니는 학교부터. 평등은 법전에 쓰인 문구가 아니라 일터에서 실현되는 현실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공정해"라고 가르치려면, 먼저 학교가 공정해야 합니다.
딸아이가 다시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매년 바뀌는 건 잘못된 거야. 우리가 바꿔야 해."
그게 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