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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Mar 14. 2020

아빠는 회사를 안 가고, 아이들은 유치원을 못가고...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것들


오늘도 아이 둘은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 한 달 가까이 좁은 아파트에서 성인인 아내와 나는 격리 생활을 하고 있고 아이 둘은 반(半) 감금 상태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하루에 부여된 에너지를 다 소모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그래서 보통 아침 9시가 넘어서 일어나는 날이 많다. 어제는 새롭게 배송된 글라스데코에 집중하느라 자정이 넘어 자더니 10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유치원과 각급 학교들이 3월 23일에 개학을 한다고 하지만 대구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에 그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되었다.


아내 스마트폰의 단톡방은 활활 타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어디를 다녀갔다더라, 오늘은 확진자 수가 감소 추세라 다행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할 것인지, 어떤 약국에 가면 마스크를 줄 안 서고 살 수 있는지 각종 정보들이 오고 간다. 아내가 갑자기 소리친다.


“여보! 빨리 건너편 약국으로 출동! 마스크 입고 완료! 신분증과 등본 가지고 가는 거 잊지 말고…”


“서랍에 몇 장 있던데? 새벽에 통장님이 놓고 가신 것도 있어”


“청도에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 드려야 한다 말이야. 빨리 갔다 와”


왼쪽 마스크는 오늘 새벽에 통장님이 배달해 주신 마스크, 오른쪽 마스크는 약국에서 사온 공적 마스크. 마스크는 어느새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는 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몸에 바이러스의 형태로 침투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감과 공포와 뭔가 모를 찝찝함으로 침투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로 낮에도 주차할 곳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보건당국의 강제조치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격리하고 만나는 사람을 경계한다. 대구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괜찮냐고…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괜찮은 건 아니다.



코로나19로 유명해진 내 고향 청도


내 고향은 경북 청도란 곳이고 부모님은 지금도 청도에 계신다. 소싸움장이 있어 아는 사람만 알던 청도라는 농촌도시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특정 종교지도자의 고향임이 알려졌고, 그 종교지도자 형의 장례식이 있었던 작은 종합병원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함에 이르렀다. 그 병원 대남병원에서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약을 타서 드셨다. 대남병원 사태가 터지기 전 날 부모님은 그 병원을 방문했다. 대남병원에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자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야야! 한동안은 청도에 오지마레이. 뉴스에서 아주 난리가 났다. 오늘 보건소에서 와가 내가 대남병원 댕기 갔다고 우리 집 소독 다 하고 갔다. 열흘 넘게 읍내나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 카네. 걱정하지 말거라.”


기억을 자주 깜빡하시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돌보시는 어머니는 주말에 손녀들의 재롱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코로나19는 그 작은 기쁨마저도 가져가 버린 것이다. 며칠 전에는 혼자 청도에 가서 아버지 좋아하시는 회를 한 접시 사서 방에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소리를 치신다.


“안된다. 들어오지 마라. 혹시나 아이들한테 옮기면 안 된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잘 먹고 건강하게 있으니까 얼굴 봤으면 됐다. 어여 가거라.”


그날 아버지는 기억을 깜빡하기 전의 모습으로 단호하게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성화에 난 밭에 나가셨던 어머니의 얼굴도 못 보고 서둘러 마을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자주 놀러나가는 금호강 모습.

어른들은 격리 생활, 아이들은 감금생활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혼자 하던 육아에 내가 함께 하게 되었다. 오전은 주로 내가 오후는 아내가 담당한다. 아이들의 아침 메뉴는 항상 고민이다. 계란 볶음밥을 하기도 하고 국을 끓여 밥과 함께 주기도 하지만 어제는 콘플레이크를 우유에 말아주었다. 오늘은 새로운 장난감이 입고되는 날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드라이브 스루가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어린이 세트를 사주었다. 왕성하다 못해 폭발해 버린 아이들의 식욕은 햄버거 하나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고 햄버거로 인해 에너지 만렙에 다다른 아이들은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저녁에 산책하러 나간 대구 가남지.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있는 키즈카페는 문을 닫은지 오래다. 아이들과 자주 가는 카페는 오로지 테이크아웃만 되고 실내 입장은 불가하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하루 정도의 시간은 가뿐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시내 곳곳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과학관은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근처의 자연휴양림들은 모두 잠정 휴업이다. 대구를 떠나 어디 나들이 계획을 세우다가 예상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그만 포기하고 만다.


요즘 가족 외출은 주로 집 주위의 반경 10km 내의 산이나 강이다. 금호강과 안심습지에 나가서 도시락을 먹고 한바탕 뛰어놀고 들어온다. 지난 주말에는 집 뒤에 있는 초례산에 갔다. 깊은 계곡에 숨어 있는 도룡뇽알을 보고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슨 무용담처럼 떠들고 좋아한다. 코로나19가 나와 아내에게 일정 부분의 자유시간을 빼앗아 갔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빠,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과 자연이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방금 전 에너지가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급하게 아이스크림을 사러 집 앞 슈퍼마켓에 다녀왔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갔더니 사람들이 날 슬금슬금 피한다. 코로나19가 진짜 나쁜 놈인 이유는 사람들의 미소를 사라지게 한 것이다. 마스크로 사람들 얼굴을 가려 웃는 모습을 볼 수 없게 했으며, 힘든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켜 작은 미소조차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 당분간 내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알려주는 증권사 문자메시지는 스팸처리를 해야겠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 놀이도 금방 싫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공부겸 놀이로 개발한 시험문제 놀이. 1시간은 아이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놀러갈 곳이 다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동네 뒷산. 도룡뇽알도 발견하고 도시락도 먹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곳. 3시간 이상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즐거운 자연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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