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통달 Apr 07. 2020

1년이라는 시간의 선물

백수일기_1

오늘도 걷는다. 뛰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3km 남짓 되는 거리를 가방 하나 메고 터벅터벅 걸어서 출근한다. 가방에는 노트북과 오늘 읽을 책 한 권, 수첩 하나뿐이다. 이어폰으로 팟캐스트 ‘매불쇼’ 밀린 방송을 들으며 걷는다. 진행자들의 개구진 멘트에 실실 웃으며 떨어지는 벚꽃잎에 똥폼을 잡아보기도 한다. 걷다 보니 벌써 사무실이다. 사무실이라고 하지만 ‘사무’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책 보고 글 쓰고 SNS로 시시덕거리는 나만의 공간이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나만의 공간. 이름도 지었다. 통달재(通達齋).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으로 1년을 계약했다. 1년이란 시간을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시절 회사 대표의 전화가 오면 그렇게 심장이 뛰었다. 사소한 지시에도 반발심부터 생겨서 충돌하기 일쑤였다. 힘든 시절 연봉 삭감을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였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최선이었지 그들에겐 그저 잉여 직원의 발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열정을 쏟았던 회사는 나에게 연봉동결과 사업부 축소로 화답했다. 그만두는 것이 회사를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미련 없이 사직서를 날렸다. 회사는 별다른 고민 없이 사직서를 수리했다. 그래서 난 백수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렇게 울리던 카톡이 울리지 않는다. 업무용 전화들도 뚝 끊어졌다. 해야 할 업무와 일정이 빼곡하게 있던 다이어리에는 이발, 건강보험료 납부, 읽은 책들, 실업급여 실업인정일 등과 같은 사사로운 일정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적인 경제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나 모아둔 돈과 대한민국의 어메이징한 복지정책인 실업급여로 1년은 간당간당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아래는 소중하게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의 생활규칙이다.


1. 가족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철학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희생이 아니라 공생(共生)이다. 술자리는 가급적 줄이고 주말에는 무조건 가족과 함께 한다.


2. 뜻하지 않은 수익이 발생하면 책을 구입한다.

어제도 꽁돈이 생겨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 2권을 주문했다. 책은 구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읽어야 함을 잊지 않는다.


3. 무조건 사무실에 출근한다.

아무리 백수라도 나태하면 진짜 개백수가 된다. 할 일이 없더라도 무조건 사무실에 간다.


4. 하루에 1만 보씩 걷는다.

건강해야 가족도 지키고,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다.


회사를 그만 두기 전 2월 코로나가 대한민국을 흔들었고 한 달 정도 흐른 4월 현재 지구 전체가 코로나로 난리다. 언제까지 코로나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만큼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착하게 살자. 그것이 1년의 선물을 즐기는 가장 최선의 마음가짐이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 30만 원에 사무실을 계약했다. 통달재(通達齋)라는 이름도 붙였다. 1년의 선물을 즐길 공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거라!"자가격리 중인 아버지가 아들 보자마자 한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