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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Apr 09. 2020

엄마의 소원

백수일기_3

“아부지, 이제 그만 좀 하시소.”



난 또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수십 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내가 뭐라 캤나?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정신이 없는 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르며 말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난 잘 안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하고 하루 종일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자 난 폭발했다.



“여보! 빨리 아버님 댁에 가봐. 어머님께서 집에 안 계시고 아버지는 찾고 난리 나셨대.”



어제 퇴근하는데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은 전화받기가 겁이 난다. 퇴근하는데 아내가 전화했다면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예상대로 또 아버지가 사고를 치셨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난 급하게 차를 몰아 아버지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친척들이 엄마가 사라졌다고 찾고 난리가 난 모양이다. 아버지는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어쩔 줄 모른다.



난 안다. 엄마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버지 몰래 조용히 집 뒤 보일러실 옆으로 가니 엄마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호야! 가라. 내가 좀 더 있다가 나가꾸마. 내가 못 살겠다”



조용히 나와서 집에 와 있는 친척들을 대문 밖으로 불러냈다.



“아지매, 아재요. 엄마는 뒤안에 숨어 있심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 가시소.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데이!”



“아이고, 그라마 다행이다. 난 너거 엄마가 우예 나쁜 마음 묵은거 아닌지 걱정을 얼매나 한지 모른데이. 다행이다. 오냐 알겠다. 아부지 밥 챙겨드리라. 근데 너거 아부지 정신없는 사람이다. 큰소리치지 마레이.”



친척들이 갔다. 아버지는 시커먼 얼굴을 마른 손으로 세수하듯 문지르며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너거 엄마 어디 못에 빠져삔거 아니가? 빨리 엄마 찾아봐라”



“아부지, 이제 그만 좀 하시소. 아부지 나도 이제 힘들어 죽겠심더. 엄마 좀 그만 괴롭히시소. 이제 고마 병원 가입시다.”



“내가 와 병원에 가노? 난 안 간다. 이렇게 멀쩡한데…”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도 답답해서 내뱉고 말았다. 너무 힘이 들어 누나들한테 전화해서 고함을 질렀다. 누나들은 아버지 상태를 아는지, 엄마가 얼마나 힘이 들어 하는지 아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의미 없는 짓이란 것을 알면서 그냥 그 상황에서는 누나들한테 전화라도 안 하면 미칠 것 같았다.



아버지를 조용히 타일러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방에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나서 어쩔 줄 모른다. 저녁을 챙겨드리기 위해 밥상에 반찬과 밥을 올리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호야! 내가 차리꾸마. 같이 밥 묵고 니는 어여 집에 가라”



아버지는 어디 갔다 왔냐며 엄마에게 수십 번 물어보고 다그친다. 그때마다 나와 엄마는 같이 외친다.



“이제 그만 좀 하시소!”



엄마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불었다. 내가 수시로 아버지 상태를 받아들이자고 했는데 엄마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저녁 먹는 내내 정신도 없는 아버지에게 당신 살아오면서 섭섭했던 이야기를 말한다. 엄마는 딸 둘을 연달아 낳았다는 이유로 작은누나를 출산하고 다음날까지 아무도 엄마의 식사를 챙겨주지 않아 굶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다시 운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엄마는 따라나오면서 말한다.



“아이고, 이제 좀 편하게 살라 카니 저런 몹쓸 병이 걸리뿐네. 내가 너거 자식들 고생 안 시킬라꼬 한다고 하는데 너무 힘이 드네. 내가 너거 아부지한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맨 정신에 다정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소리 한 번 듣는게 소원이었는데 인자는 정신이 저래 없어가 그것마저도 못하고 저렇게 나를 힘들게 하네. 호야! 나는 개안타. 어여 가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와 많이 놀러 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어야겠다. 엄마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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