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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Apr 24. 2020

공부의 즐거움

백수일기_6


4년 전 이맘때도 난 백수였다. 친구가 사장이었던 회사에서 난 반(半) 해고를 당했다. 그 친구 개새끼 사무실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그동안의 사업 방향에 대한 다툼을 하던 중 잠깐 빈 허공을 쳐다보는데 진짜 가족의 얼굴이 나타났다. 마치 독실한 크리스천이 하늘에서 예수의 모습을 보듯이… 순간 성질을 이고 다시 비굴하게 살까 잠시 고민을 했었지만 개똥 같은 자존심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친구 개새끼와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8개월의 백수생활 동안 돈은 없어서 힘들었지만 아내와 두 아이와 즐겁게 지냈다. 내 나름대로 육아휴직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여행도 다녔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조식 뷔페의 즐거움은 없었지만 부여에 있는 호텔 리조트에 가서 수영도 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아이쿱생협’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서류 전형에서 불합격 없이 응시자 모두 필기시험 기회를 부여하는 전형절차였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라 면접이나 적성검사에서 합격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필기시험 책을 구입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독서실로 갔다. 가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과 노는 것 이외에 오로지 그 책 한 권만 달달 읽고 외웠다. 첫 번째 통독을 하고, 두 번째 연필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며 공부했다. 세 번째 볼 때 내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노트에 적었다. 그다음부터는 그 노트를 읽고 또 읽고 까먹으면 책을 다시 보고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노트에 머릿속에 있는 내용들을 적어보았다. 인터넷에서는 필기시험 노하우에 대한 팁이 있었으나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냥 책을 보고 적고 외웠다.


2주간 그렇게 공부하고 필기시험장으로 갔다. 다들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었다. 내가 나이가 제 많은 것 같았다. 시험 감독관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시험지를 받았다. 이미 내 머릿속엔 책 한 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이제 시험문제를 보고 그에 맞는 답만 출력하면 되는 일만 남아 있었다. 주관식, 객관식 문제 50문제를 10분 만에 끝냈다. 헷갈리는 문제도 없었다. 객관식 문제는 5개 지문 중 하나에 체크를 하고 주관식 문제는 아는 것을 적으면 되는 일이었다.


일주일 뒤, 난 당연하게 필기시험 합격 문자를 받았다. 하지만 그 뒤 인적성검사와 면접에서 떨어져 그 회사를 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노하우와 즐거움은 알게 되었다. 만일 그 열정으로 사법시험이라도 봤으면 합격했을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밤에 자다가도 책 1~2페이지 정도는 술술 외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다시 백수로...


4년 뒤 다시 백수가 되었다. 지난 한 달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오랜만에 글을 썼지만 오마이뉴스 메인에 내 기사가 올라가 가장 많이 본 기사 1위도 했다. 공부와 독서도 마찬가지이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 번 공부와 독서에 대한 근육과 글쓰기에 대한 근육이 생기면 그 후에 관리만 잘 하면 좀처럼 실력은 줄지 않는다. 문제는 그 근육이 생기기 전에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근육이 생기기까지 투자하는 내 시간의 양과 그 시간에 주입하는 열정의 양이다.


오늘은 어떤 것을 공부한다는 계획보다는 ‘오늘은 어떤 책의 27페이지를 펼친다’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간단한 행동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오늘은 1만 보를 걸어야지라는 일일 총량의 목표를 세우지 말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놀아준 다음 아이들이 자면 ‘현관으로 나가서 나이키 조깅화를 신어야지’라는 행동의 첫 단계에 대한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어떤 자격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어제 드디어 첫 번째 ‘인강’을 들었다. 오늘은 아는 형님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제, 오늘 열심히 온라인 단계별 교육을 수강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자기계발서에 졸라 많이 나오는 내용을 읊조리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만들기 공부를 하고 있다. 입점신청을 해 놨다. 침기름과 고춧가루를 파는 쇼핑몰이다. 이름은 "삼삼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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