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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May 26. 2020

개소리보다 못한 충고와 위로

백수일기_8

어제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전 직장의 부하직원들과 먹었는데, 당연히 내가 술값을 냈다. 재난지원금에서 72,000원을 소비했다. 은행 잔고도 서서히 줄어들고 재난지원금도 줄어든다. 예전 일주일에 두세 번씩 폭음하던 음주 실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다만 내 마음에서 차지하는 우울감은 비 온 뒤 이끼처럼 서서히 자리를 넓혀간다.


어제오늘 청도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 뭐 뻔하겠지. 주간보호센터 직원은 아버지를 데리고 가지 못하고 헛걸음을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복숭아밭과 집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와 여러 번 싸우면서도 삼시 세끼를 챙기고 아버지를 씻기고 약을 챙겨줬겠지. 엄마는 몇 달 새 많이 늙고 살도 많이 빠졌다. 지난주에 청도에 5일을 내려갔다. 나도 지치고 힘이 드는데 하루 종일 아버지와 전쟁을 치르는 엄마는 오죽하실까? 치매라는 병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을 피폐하게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진짜 진짜 맞는 말 같다. 아버지를 만나면 힘없는 당신 모습에 내가 힘이 빠지고, 떨어지면 엄마 걱정에 내 마음이 불편하다.


언젠가부터 난 사람들에게 충고나 위로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나이가 40을 넘어 50이라는 숫자가 더 가까워오자 듣는 사람의 배려와 진정성이 없는 충고나 위로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가 경제활동과 재테크에 대해서 떠드는 것, 후배란 놈이 자신의 사회의식에 대해서 나를 설득하는 것, 나보다 단지 몇 년을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육아와 교육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는 아저씨 아줌마,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을 나타내며 평론하는 수많은 사람들…


처음에는 일일이 대응하고 논쟁하고 때론 수긍하는 척 고개도 끄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충고나 위로를 듣고 오는 날이면 며칠 동안 내가 너무 힘이 들었다. 그건 꼴같잖은 나의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배려와 진정성 없는 말라비틀어진 일방통행식의 충고나 위로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살면서 기억나는 가장 큰 위로는 힘든 시절 퇴근길에 누나가 전화 와서 했던 “명호야, 힘들지?”라는 한 마디였다. 운전하면서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전화를 끊고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자 거짓말처럼 속이 후련했다. 누나에게서 진짜 위로를 받은 것이었다.


내가 친형처럼 생각하는 선배 2명이 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충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쉴 새 없이 말하면 그저 듣고 빙긋이 웃고 듣고 있다가 헤어질 때 어깨를 툭 치며 “힘내!”라는 한 마디를 한다.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이며 나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충고라고 나는 느낀다. 그 선배와 만나고 오면 나는 진짜 힘이 생긴다. 그들은 물론 내 얘기를 듣느라 힘이 빠지겠지만…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에 있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안 보기로 결심했다. 조그만 짬이라도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 어플을 손가락으로 클릭하는 나를 보고 놀랐다. 걸어가다 내가 올린 게시글에 누가 댓글 달았나 확인하는 나를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생각과 모습들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충고는 가볍게 무시하지만 아내의 충고는 무겁고 존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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