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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un 05. 2020

"팬텀싱어 3" 본방사수를 위해...

백수일기_10

아버지의 약이 다 되어간다는 엄마의 전화에 급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갔다. 아버지는 10년 넘게 수면유도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밤에 잠을 주무시지 못한다. 몇 년간 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느 날부터 수면유도제 약봉지에 우울증 치료제가 추가되었다. 아마 치매약을 드시고 난 후부터 우울증 치료제가 추가되었던 것 같다. 요즘 아버지는 자주 약을 거부한다. 아들인 내가 드리면 아무 말 없이 드시지만 내가 없을 때 엄마가 약을 주면 안 먹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몇 봉지는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고, 몇 봉지는 먹는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몰래 휴지통에 버렸을 것이다.



어제 처음 알았다. 정신의학과 처방약은 정해진 투약일 만큼 처방이 되고 추가로 여유 있게 처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원래 예정된 처방일보다 열흘 정도 일찍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 선생님은 정신의학과 약품들의 처방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다시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러면 일주일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다고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오라고 한다. 고맙다고 3번 정도를 말하고 다시 돌아섰다. 아버지는 병원을 나와 차에 오를 때까지 ‘괜한 헛걸음을 했구나’라는 말을 다섯 번인가 여섯 번을 했다.



“아부지, 잠 오는 약은 함부로 잘 안 지어 준답니다. 그러니까 엄마 챙겨주면 꼬박꼬박 챙겨드시소. 안 묵겠다고 버리지 말고요. 다음 주에 내하고 한 번 더 바람 쐬러 나옵시더”

“괜한 헛걸음을 했구나! 니도 바쁠텐테…”

“개안심더,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면 되지뭐예”



예전 같았으면 약봉지 관리를 잘 하지 못한 엄마한테 화를 내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규정대로 설명하는 간호사에게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며 처방해 달라고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이제 일정 부분 포기하는 마음과 일정 부분 절제하는 마음이 동시에 커가고 있다. 내가 화를 내고 성난 황소처럼 고함을 질러봐야 돌아오는 것은 지쳐가는 내 마음과 자꾸 주눅 들어가는 아버지의 표정과 어찌할 바 모르는 엄마의 안타까운 눈빛뿐이다.



병원에서 돌아와 사무실에서 밀린 공부를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과제를 무사히 넘기고 세 번째 과제에 접하니 또 공부해야 할 것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생경함보다 그 생경함을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더 큰 문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도 익숙하지 않은데 그 모바일 환경에 내가 비집고 들어가려 하니 쉽지가 않다. 오늘부터는 웹디자인인지 포토샵인지를 배우고 있다. 또 낯선 생경함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두려움은 그 두려움 속으로 들어갈 때 두려움이 사라지는 법이다. 세상은 새로운 두려움과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이야기라고 했던가?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던가? 시바! 모르겠다.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남자가 기술 하나 정도는 있어야 식구들 밥 먹이고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가진 기술이라곤 술 먹고 사람들과 야부리 터는 것 밖에 없으니 지금 또다시 새로운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것이리라.



요즘 사무실에서 잠깐 쉴 때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을 때나 자주 ‘팬텀싱어 3’의 출연자인 유채훈의 노래를 듣는다. Il Mondo, Love Poem, Starai Con Me, Angel까지… 유튜브로 음원으로 아마 수백 번 들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무기력이 온몸과 심장을 물들일 때, 분노의 콧바람이 시속 100km/h가 넘을 때 유채훈의 노래를 들으면 나의 몸과 심장과 콧구멍은 차분히 힐링이 된다. 지금 가장 큰 숙제는 오늘 저녁 9시에 ‘팬텀싱어 3’ 본방사수를 위해 두 분의 딸내미를 8시 50분까지 숙면에 드시게 하는 일이다  

내 마음의 힐링 노래 <팬텀싱어3> 유채훈,안동영 노래 "Love Poem"(출처:JTBC 팬텀싱어3 갈무리)

https://youtu.be/m3JrzfVLE7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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