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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ul 15. 2020

쥐똥나무 꽃 향기에 관한 개소리

백수일기_13


비가 온 뒤라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 곳곳에 개미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혹시나 밟을까 조심스레 발을 옮겨 본다. 조금 더 가니 쥐며느리인지 공벌레인지 모를 놈 하나가 제 딴에는 전 속력으로 내 앞을 가로지른다. 거무튀튀하고 작은 놈이라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내가 살생을 금하는 스님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죽이지 않아 다행이다.


걸어서 사무실을 가는 40분 정도의 시간에 여러 가지를 본다. 할머니들이 화단 석축에 심으시는 꽃이 '송엽국'이라는 것도 알았고, 화장을 한 아가씨가 지나간 것처럼 진한 향을 풍기는 꽃의 이름이 '쥐똥나무'인 것도 알았다. 향과 어울리지 않게 쥐똥나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가을에 열리는 까만 열매가 쥐똥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일 내가 쥐똥나무를 처음 발견하고 식물 이름을 명명(命名)하는 영광을 얻었다면 ‘아가씨분내음 꽃나무’라고 지었을 것이다. 그만큼 진하고 몽롱함까지 느끼게 하는 강한 향을 가진 나무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무서운 세상이다. 만일 내가 ‘아가씨분내음 꽃나무’라고 했다면 여러 사람에게서 비판받았을 것이다. 젊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용어로 혼동할 수 있는 ‘아가씨’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화장품 향이라는 뜻의 ‘분내음’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여성의 외모 지향적 행태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조심해야 한다. 입으로 나오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써야 하고, 행동하는 손과 발짓 하나 하나에도 의미가 담긴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고체계에서 말과 행동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애초에 가졌던 생각은 내 입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 사람들의 것이 되고, 내가 가졌던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 행동은 사람들의 개별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래서 쥐똥나무 꽃의 냄새에 취해 섣불리 이름을 짓지 않고 가을까지 기다려 까맣고 작은 열매를 보고 쥐똥나무라고 한 옛사람의 선각자적 사고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동네 내과를 찾는 날이다. 별다른 진료는 없다. 혈압과 몸무게를 측정하고 의사와의 1분 남짓한 면담 후에 4,000원을 지불하고 매번 같은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19,800원을 지불하고 노란색과 민트색의 약통 두 개를 받아온다. 10년 가까이 그 고혈압약과 고지혈증 치료제는 매일 차가운 물과 함께 내 위장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어제는 혈압이 140을 넘어섰다. 의사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고 운동을 못했다고 하니 의사가 말한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혈압에 많이 안 좋아요. 그리고 요즘 체중이 조금 느셨는데 운동은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짠 거 많이 드시지 말고요."


의사들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말한다. 마치 그게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내 몸 어딘가에 스트레스 조절 스위치와 운동 부스터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우울감을 날려버리는 초강력 울트라 기능의 버튼도 함께…


병원에 다녀오니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고, 우울감이 더 깊어진다. 시바…


<쥐똥나무> 물푸레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미터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이다. 5~6월에 흰색 꽃이 핀다. 향이 아주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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