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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ul 08. 2020

섬진강에 가고 싶다

백수일기_12

섬진강이 있는 하동을 가족들과 다녀왔다. 아이들과 섬진강에 있는 강물을 차고, 모래밭을 뒹굴었다. 흙과 모래를 손으로 긁으며 재첩 조개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곳곳에 있는 야생차밭이 내뿜는 산소를 마셨고,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사랑채에 올라 섬진강 들판을 바라보는 눈호강도 했다. 섬진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 전망 좋은 카페에서 케이크도 사 먹고, 화개 장터에서 기념품도 샀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했던 쌍계사와 야생차 시배지도 좋았다. 배가 고파 우연히 찾아간 하동읍내 상설시장의 충무김밥의 벌건 양념을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흐른다. 그렇게 지금의 내 퍽퍽한 일상에 윤활유 같은 시간을 선물했다.



내가 제일 힘들다는 못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사람만 사라지면, 또는 이 상황만 극복하면 행복해질 거란 바보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밟아온 길의 곳곳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고, 힘든 상황이 켜켜이 존재했다. 삶이란 것은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고 항상 힘든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엄마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 아픈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런 아버지와 매일 싸움 같은 돌봄을 하느라 양쪽 팔뚝에 피멍이 든 엄마의 모습을 떠오르면 가슴이 답답하다. 10년 넘게 끊었던 담배가 요즘처럼 절실할 때도 없다. 아버지와 엄마와 아들이라는 고통의 트라이앵글의 바깥에 서서 관전자처럼 지켜보는 누군가에 대한 절실한 기대는 이제 이유 없는 증오로 바뀌어 간다. 언젠가 지금의 지긋지긋한 트라이앵글도 부서져 두드리고 두드려도 소리도 나지 않는 금속조각이 되겠지만 지금 내가 앉아 있는 트라이앵글 소리는 너무 고통스럽다.



아내가 소개해 준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사무실에서 숨죽여 울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딸이 엄마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치매에 걸린 엄마에게 ‘엄마! 죽어버려!’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정혜신은 말한다. 그럴 수 있다고, 그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임을 알기에 그럴 수 있다고… 그 말을 듣는데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나도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엄마가 편해지고 힘들게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힘든 시선을 그만 내려놓고 싶었다.



치매란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힘든 병이다. 그 병에 물든 사람의 존엄성은 물론이,  돌보는 가족의 존엄성까지 파괴하는 고통스러운 병이다. 차라리 암에 걸리지. 암에 걸렸으면 수술이나 치료라도 해볼 수 있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지. 근데 아버지가 지금 앓고 있는 병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끼어들 공간이 없다. 그래서 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도 아프고 엄마는 더, 더, 더 아프다.



섬진강에 다시 가고 싶다. 하루만이라도 맑은 기억을 가진 예전의 아버지와, 팔뚝에 피멍이 없는 예전의 엄마랑 앉아 한참 동안 섬진강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https://youtu.be/GT2eiC8bX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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